- 사회복지사인 이우석 씨가 창업
- 주민 차 마시며 소통하는 공간
- 동네 이야기 나누는 사랑방 변모
- 손님 신상 꿰차고 있는 이 대표
- 테이블 합석시켜 ‘뚜쟁이’ 별명

커피를 통해 마을 중심의 사회복지를 추구하는 카페가 있다. 마을의 서원을 지향하는 카페는 동네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랑방이 됐고, 서서히 이웃 간 소통을 상징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새로운 형태의 복지 모델이자 실험으로 평가받는 ‘본디 소(素), 바 소(所), 글 서(書), 집 원(院)’. 경남 양산시 물금신도시의 소소서원 이야기다.

■우리 동네 사랑방·도서관

경남 양산시 소소서원은 커피 한 잔으로 마을과 주민 중심의 사회복지를 꿈꾸는 카페로, 새로운 복지 모델로 주목받는 곳이다. 카페 1층은 주민 간 직접 소통의 공간이면서 도서관 역할을 한다. 송진영 기자

양산경찰서 인근 택지조성이 한창인 곳에는 보기 드문 형태의 3층 건물이 있다. 노랑이 가미된 잿빛 건물로, 아름답고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건물이다. 1층 카페는 평일 오후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붐빈다. 소소서원 이우석(37·사진) 대표는 커피 주문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인터뷰 형태로 인사를 나눈 뒤 이들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따로따로 카페에 왔던 손님들은 어느덧 한 테이블에서, 심지어 테이블을 한 데 모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 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셨거나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데 그저 동네 주민이라는 이유로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형태였다. 자신을 바리스타이면서 중매쟁이라고 소개한 이 대표는 “서원을 찾은 모든 이의 신상을 꿰기 위해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다 물어본다.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자를 찾아주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진짜 이야기는 국가나 지자체, 전문기관이나 전문가 개인이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 동네 주민 만큼 알 수가 없다. 주민이 이야기하는 우리 동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동네의 문제점과 나아가 우리 동네의 복지 문제가 담겨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고 공유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 대표가 설명하는 소소서원의 역할이었다. 이 대표는 어려운 이웃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무조건 돕자는 식의 시혜적 복지에서 벗어나 마을과 주민이 함께하는 ‘카페 사회복지사업’을 펼치는 청년 복지사다. 사회복지사인 이 대표는 마을 카페 ‘소소봄’의 운영자로 양산신도시 주민에게는 익히 알려진 유명인사다. 7년 동안 범어신도시에서 주민 공연 등 문화생활 장터로 ‘소소봄’을 운영했던 이 대표는 조금 더 큰 공간에서 제대로 된 ‘카페 복지’를 구현해보고자 양산경찰서 옆 택지개발지구에 3층 건물을 지어 ‘소소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우석 대표

카페 1층은 사랑방이자 도서관이다. 카페 방문객들이 기증한 인문학 서적들이 소소서원의 보물이다. 카페를 통해 이웃 주민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책을 자발적으로 공유해보자는 취지였는데, 어느덧 230여 권이나 모였다. 이 대표는 서원 운영이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접어들면 3층을 아이들을 위한 야외극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각 지붕 형태의 천장 벽면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카페에는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나 공부를 하는 대학생은 있지만 중·고생은 거의 없다. 중학생 한 명이 혼자 카페에 와서 숙제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만 올 수 있는, 어른과 같이 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주저 없이 놀러 올 수 있는 서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소통과 이해… 커피 한 잔의 가치

소소서원의 건물 외부 전경.

소소서원에서의 ‘복지’는 특별하면서도 시혜적인 서비스나 정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자 이웃의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를 풀기 위한 수단, 결국은 커피 한 잔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게 이 대표의 구상이다. 이 대표는 “커피 한 잔에 주민과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 서원을 일상 복지 현장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며 “서원의 커피가 맛이 없고 제값을 못 한다면 주민이 찾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소소서원의 커피가 일회성 음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운영 철학을 견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회적 약자들은 지역사회에 어울리지 못한다. 적응과 융화를 강요받기만 할 뿐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사회적 약자가 더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약자들은 받기만 하는 것에 익숙하고, 지역사회는 물적 지원으로 이들을 도우면 된다고 생각해버린다”며 “그렇기 때문에 약자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려 하고, 지역사회도 약자의 사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약자’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모든 이를 지칭한다. 그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이웃이 서원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친해지고 사연을 공유하다 보면 나의, 이웃의, 마을의 문제가 드러나고 대책도 마련될 수 있다”며 “주민들이 모인 서원에서 약자가 도움을 청하고, 이를 주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극복해보려는 시도는 유익한 일”이라고 부연했다.

소소서원은 이르면 올 연말부터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준비할 예정이다. 앞서 소소봄에서도 소규모 음악공연과 미술 전시회 등이 꾸준히 개최됐다. 이 대표는 “사회복지를 공부한 사회복지사로서 새로운 개념의 사회복지를 현장에서 실현해보고 싶었다”며 “주변에서 아직은 서툴고, 꿈만 거창하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상의 복지는 마을 속에서 주민과의 소통에서 시작되고 구현된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송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