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 시절 뜻하지 않게 함께 군 생활을 하던 간부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출근을 하지 않아 군 숙소를 방문했을 때 고인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고,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를 호소하지 않은 터라 더욱더 안타까웠었다. 고인은 부검결과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거미막하 출혈이 사망원인임이 밝혀졌다.

이런 거미막하 출혈은 외상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뇌동맥류(뇌혈관 벽의 일부 결손으로 뇌혈관 벽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질환) 파열에 기인한다.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출혈이 뇌의 거미막하 공간으로 급속하게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로 인해 심한 두통(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및 의식 소실, 마비 같은 비정상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하며 파열과 동시에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신속하게 병원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치료 과정 중 급성기 사망률이 51%까지 이르는 질환으로 신경외과 의사로서는 마주하기 싫은 질환 중 하나다.

문제는 이 같은 뇌동맥류는 거의 대부분이 환자 본인이 인지할 수 있는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파열되지 않은 동맥류를 머릿속의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뇌동맥류는 뇌혈관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뇌동맥류의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흡연, 고혈압 등 후천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파열이 촉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리학적으로는 뇌혈관의 혈류역학적 변화, 동맥경화성 변성 등에 의한 뇌혈관 내 구조인 내탄력층의 손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동맥류는 전체 인구 1~2%에서 발견되고 거미막하출혈은 매년 10만 명당 20명 정도 발생한다. 특히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고, 중년층 이상인 40~60세 연령에서 가장 흔하다.

현재까지 뇌동맥류를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 수술적 치료로는 혈관 내 수술인 코일색전술과 개두술을 통한 결찰술이 있다. 치료의 목적은 뇌동맥류 내부로의 혈류는 차단하는 것이다. 뇌동맥류 코일 색전술은 다리의 대퇴동맥 혈관을 통해 혈관 내에 도관을 넣고 미세도관을 통해 뇌동맥류 내부에 백금 코일을 풀어 넣어 내부를 채우는 수술법이다. 개두술인 결찰술은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을 열어 뇌 조직 사이에 숨어 있는 뇌동맥류를 노출시킨 뒤 집게처럼 생긴 클립으로 뇌동맥류의 경부를 결찰하는 수술법이다. 각각의 수술은 장단점이 있어 뇌동맥류의 위치나 크기, 주변 혈관과의 관계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약물 치료와 건강관리 등이 필요하고, 정기적인 검사로 뇌동맥류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위험한 거미막하출혈을 유발하는 뇌동맥류에 대해 40대 이후에는 뇌혈관 관련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고혈압, 당뇨, 술, 담배, 운동, 식습관 등 위험인자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동맥류가 발견된 경우 무엇보다 자의적 판단보다 뇌혈관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겠다.

이영서 온종합병원 심뇌혈관센터 과장·신경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