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바둑 강자가 온라인에 홀연히 나타나 한국·중국·일본의 바둑계를 뒤흔들고 있다.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면서 인공지능(AI)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중일 바둑 고수를 연파한 마스터. 한큐바둑 제공=연합뉴스

'Master(마스터)'라는 아이디(ID)를 쓰는 이 '복면기왕'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기는 기사에게 주겠다며 10만 위안(약 1천700만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한큐바둑 사이트는 지난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연 이 이벤트에 세계 최정상 기사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4일 밝혔다.

커제 9단, 스웨 9단, 구리 9단, 퉈자시 9단, 롄샤오 7단 등 중국 상위랭커들과 일본 최고수 이야마 유타 9단은 본명으로 온라인 대국에 나섰다.

한국 기사들은 익명의 아이디로 참여했으나, 랭킹 1위 박정환 9단을 비롯해 김지석 9단, 박영훈 9단 등 세계대회 및 국내대회 우승자들이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터 9단은 이들을 상대로 20전 전승을 거뒀다. 20국의 모든 기보에서 마스터 9단은 초반부터 가볍게 집의 우위를 점하고 끝날 때까지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20국 중 17국이 마스터 9단의 불계승이었다. 마지막 20국 상대인 커제 9단도 마스터 9단에게 초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흑 불계패를 당했다.

바둑계는 마스터 9단이 인공지능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마스터 9단의 기풍에 대해 한큐바둑 관계자는 "의연하고 부드러우며 대범하다. 귀의 실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엄청난 대마 싸움의 바꿔치기도 계산이 이뤄지면 흔쾌히 실행한다. 수천 년 동안 실전을 통해 진화하고 축적된 바둑의 틀을 무시하고 철저한 가치판단으로 제 갈 길을 찾아간다"고 평했다.

마스터 9단의 출현 전에도 또 다른 국내 바둑 사이트에서는 '마지스터(Magister)'라는 기사가 작년 12월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세계 최정상의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30연승을 달렸다.

구리 9단은 3일 자신의 웨이보에 "비록 일찍이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실제 바로 앞에 당면하니 나와 우리 프로기사들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어쩌면 예전부터 우리가 생각했던 영원히 변하지 않을 바둑의 정석과 진리가 마스터의 출연으로 전복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잘 자자. 아름다운 내일을 맞으러 가자"라며 씁쓸한 소회를 표현했다. 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