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병원 남소현 소아외과 교수가 복강경 수술을 앞둔 신생아를 살펴보고 있다.

- 불룩해지면 카메라·기구 삽입
- 크게 여는 개복수술보다 정교
- 3㎏ 미만 갓난 아기에게도 안전
- 소아 외과수술법 선택폭 넓어져

30대 중반에 어렵게 임신한 주부 김모 씨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아기 뱃속에 물혹이 보여 큰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모 대학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딸아이는 '담관(담도) 낭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담관 낭종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의 통로인 담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있는 병. 이 병은 담관이 점점 부풀어 오르면서 담관염이나 췌장염을 유발하며, 담관 낭종이 아주 큰 경우 위와 십이지장을 눌러 우유를 먹는 데 지장을 준다. 병원에선 빨리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신생아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담도가 거의 막혀 황달이 시작됐다.

다행히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다는 말에 김 씨는 선뜻 용기를 내 수술을 결정했다. 생후 한 달, 4㎏가 채 안 되는 아이는 담도를 모두 잘라내고 소장을 담도에 연결하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4~5시간의 수술을 견뎌냈다. 일주일 후 퇴원한 아이의 배에는 조그마한 수술 자국들이 선과 점처럼 남아 있기는 하나 커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혀도 될 정도라 아이 엄마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외과수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개복수술을 한 신생아(위)와 복강경 수술을 한 한 신생아. 상처부위 크기가 다르다.

외과 수술에 있어서 복강경은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무조건 배를 크게 열어야 훌륭한 외과의사라 인정받던 시대는 복강경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얼마나 작은 상처를 예쁘게 만들면서 원래의 수술을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시대가 됐다.

암수술의 대부분도 복강경으로 이뤄지는 시대에 가장 발달이 늦었던 분야가 바로 신생아 복강경이다.

'복강경'의 원리는 배에 작은 구멍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채워 배를 불룩하게 만든 상태에서 카메라와 기구를 삽입해 수술한다. 배 전체를 볼 수 있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확대된 시야는 개복수술보다 더 정교하다.

어른들은 배가 갑자기 불룩해진다고 해서 심장이나 폐가 눌려져 심정지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신생아는 복부에 가스를 채웠을 때 심장과 폐에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2시간 이상의 수술과 마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또 좁은 공간에 3~4개의 구멍을 뚫어 큰 기구로 수술하는 것이 마치 스모선수가 갓난 아이를 만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신생아 복강경 수술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 지난 10년간 끊임없는 논란이 있었다.

동아대병원 남소현 소아외과 교수는 "이제는 3㎏ 미만의 신생아도 복강경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 해주는 것이 좋은 때가 됐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김묘징 교수, 마취통증의학과 정찬종 교수와 함께 최근 3㎏ 미만의 생후 4일 신생아를 대상으로 복강경을 통해 선천성 식도 열공 탈장 수술을 성공해 서울지역 대형병원에서 이뤄지는 수술이 이제 부산에서도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복강경 기구 개발도 한몫

그간 성인용 복강경 기구나 장비들은 5㎜, 12㎜의 큰 투관침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3㎜ 복강경 기구가 개발되면서 신생아 복강경 수술이 탄력을 받고 있다. 수술 땐 통상 3, 4 개의 구멍을 만든다. 한 개는 카메라용, 2개는 집도의가 양손으로 움직이는 기구가 뱃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장기를 젖혀주거나 당겨주기 위해 투관침(뚫개)을 추가로 삽입하기도 한다. 신생아용 복강경 기구가 만들어졌다 해도 A4 용지 한 장 정도의 작은 배 안에서 기구를 조작하는 것은 어렵다. 수술 숙련도 또한 아주 중요하다.

난간은 또 있다. 수술 중 이산화탄소 분압이 높아지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경우 수술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개복술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 이 때문에 체중 2㎏ 이하이거나 전신 상태가 너무 위중해 배를 부풀리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1시간 이상의 수술과 마취를 견디지 못할 경우에는 아예 시도조차 못한다.

그럼에도 선천성 횡격막 탈장, 위·식도 역류 방지 및 위루관 수술과 같이 시야가 좋지 않고 어려워 큰 개복술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성공적인 복강경 수술은 크나큰 희망이다.

소아외과 의사들이 수술 상처를 최대한 작고 예쁘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까닭은 신생아의 개복술 상처가 아이가 자라면서 같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작았던 상처는 눈에 띄지 않게 남아 있지만 개복술의 상처는 최소 복부 4분의 1 이상을 가로로 절개하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면 무슨 병으로 수술을 받았는지보다는 상처에만 더 신경이 가는 게 부모 마음이다.

남 교수는 "요즘은 신생아 집중치료센터에서 보다 안전하게 복강경 수술을 할 수 있다"며 "이제 신생아도 복강경과 개복술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도움말=남소현 동아대병원 소아외과 교수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