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여성공감톡톡' 녹화 현장, 사진 : 김정록 기자

녹화 하긴 합니까?

지난 16일 저녁 7시 부산 센텀의 시청자미디어센터 안이 부산해 진다. 바로 동래여성인력개발센터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여성공감톡톡'의 녹화날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출연으로 만들어지는 '여성공감톡톡'은 경력단절여성과 여성문화, 지역 소식 등을 들려준다. 그런데 시작시간인 7시가 넘어서도 녹화를 안 한다. MC 남인숙 씨가 라디오 녹화스튜디오를 임대했어야 했는데, 잘못해 촬영스튜디오를 빌렸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게스트 의자와 책상을 옆의 대강당에서 가져 온다. 아직 게스트들은 이 상황을 모른다. 남 씨는 녹음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며, 면피책으로 느닷없이 촬영을 한다고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카메라 2대를 빌렸다. 같은 MC인 동래여성인력개발센터의 이숙련 부관장은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다. 게스트들이 속속 도착한다. 게스트와 잠깐 인사하고 MC들은 화장을 해야겠다며, 화장실로 간다. 게스트들은 우리도 해야겠다며 우르르 화장실로 따라간다. 이거 녹화를 하겠나? 취재를 잘 못 왔나? 온갖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7시 20분 게스트 3명과 MC 2명이 자리에 앉는다. 게스트 중 한 명이 할 말이 없다고 자기에게는 질문하지 말라고 한다. 30분을 절대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숙련 부관장은 "'해피투게더'같이 그냥 하면 된다"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카메라 2대를 켜놓고 셋팅을 끝낸 남인숙 씨가 자리에 앉아서 "이제 시작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튜디오 문을 안 닫았다. 게스트 한 명이 후다닥 달려가 문을 닫는다. 7시 30분 겨우 녹화가 시작된다. 오늘은 '동래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소개하는 날이다. MC들의 입이 열린다. 녹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스튜디오가 활기차 진다. 방송이 시작되자, 그들은 노련한 진행자가 돼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여성공감톡톡'을 진행하는 남인숙, 이숙련, 송경림 씨 사진 : 김정록 기자

지난 해 6월부터 '여성공감톡톡'은 이숙련(동래여성인력개발센터 부관장), 송경림(동래여성인력개발센터 행정지원팀장), 남인숙(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커뮤니티제작단)의 여성 3명 공동 MC체재로 출발했다. 지금은 '말캉쌉쌀 직업토크', '이슈톡톡', '소소한 이야기' 3개의 프로그램을 한 달에 2-3번 방송한다. 여성을 알리는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아마추어라고 대충 만들지 않는다. '당신의 패션, 거울과 상의하십니까?' 편은 60여 명에게 설문지를 돌려가며 3개월 동안 제작했다. 주제는 '생각하고 소비하라'였다. 둘 다 하기 싫은 '육아를 할래? 군대를 갈래?' 편은 남편과 출산을 앞둔 아내를 함께 출연시켜, 남편에게 가사를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기획회의부터 콘티작성, 녹화, 편집까지 모두 일인제작미디어시스템이다.

방송에서 구청장 욕을 해도, 구청장이 모르는 남자들

'안전하지 않은 고리원전'을 방송하며, 구청장에게 육두문자로 욕을 했다. 이 사람들은 방송에 개인감정을 싣는다. 그런데 구청장이 모른다. 100명-200명이 다운로드하는 팟캐스트이기 때문이다. "구청장, 구의원 욕을 해도 반응이 없네요. 명예훼손? 듣고 제발 반응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팟캐스트 '불량식품'을 운영하는 천호철(히어로즈 스토리 공동대표, 31세) 씨의 말이다. '불량식품'은 김상수(히어로즈 스토리 공동대표, 33세) 씨와 주로 제작한다. 인터뷰 프로그램인 '부엉인'을 가장 많이 방송한다.

사진 왼쪽부터 팟캐스트 '불량식품'을 운영하는 김상수, 천호철 씨 사진 : 김정록 기자

이 사람들을 인터뷰하다보면 뭔가 가슴 한 켠이 아릿해진다.

"남녀차별합니다. '부엉인'의 게스트로 롯데 장내 아나운서인 김미주 씨가 출연했을 때 말은 안하고, 그녀의 얼굴만 봤습니다. 그런데 거의 남자들만 출연합니다" 김상수 씨의 말이다. 이들은 총각이다. 프리랜서 강사로 커뮤니티 교육을 한다지만, 일이 없을 때는 그냥 백수다. '불량식품'은 B급 문화를 선호한다. "뭔가 고기 탄 것 먹는 느낌, MSG의 맛? 약간 유해함을 알고 있음에도 먹는 그런 방송입니다" 천 씨의 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백수라 하지 않는다. 인생모험가라고 칭한다. "저희가 재미없으면 방송 안 합니다. 출연진은 20대-50대의 남녀노소지만, 엉뚱한 사람만 출연시킵니다." 김 씨의 말이다. 엉뚱한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김 씨는 "그냥 끌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부엉인'에는 세계일주 유영준, 이민아 시인, 독립다큐감독인 문창현, 김주미, 애플뮤지엄 엄대흠 등 22명이 출연했다. 이들은 2014년 5월부터 시작해 벌써 43번 방송을 했다. 촬영을 1시간 했으면, 쿨하게 50분 정도를 통째로 붙인다. 앞의 10분은 출연자와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다. 편집하기 귀찮단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면 재미가 떨어집니다. 저희는 한 달에 2번 방송하지만, 재미없으면 안 합니다. 그래서 공이 덜 들어가는 '부엉인'을 많이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김 씨의 말이다. 재미와 자유, 이 속에서 인터뷰이들의 속내를 끄집어낸다. 독립다큐 편에서는 문창현 씨가 제작현장의 괴로움을 얘기하다, 눈물까지 보였다. 이들은 사람 얘기 하는 것이 좋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방송을 시작했다.

활발한 부산의 마을미디어

부산에서 시민이 직접 제작하는 마을미디어는 신문이 19개, 잡지 2개, 웹진 2개, 팟캐스트 7개, 라디오가 3개가 운영 중이다. 동네 할아버지, 아줌마, 직장인, 대학생, 백수까지 기자로 , 진행자로 제작에 참여한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 연구소 정수진 소장은 "마을미디어는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여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인쇄, 취재, 제작 등에 있어 시간과 비용 등의 이유로 자주 없어지기도 한다. 시민참여 마을미디어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