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부산대병원 장기이식팀 최병현(왼쪽) 교수가 불치의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췌장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 기증 췌장, 십이지장에 붙여
- 기존 방식보다 후유증 없어

서울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도 췌장이식으로 불치의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양산부산대병원 장기이식팀 최병현 교수가 부임 1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총 4건의 췌장이식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 김모(45) 씨가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은 건 지난 7월 중순께. 그는 만성 췌장염으로 인해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 이미 온 상태였다. 췌장에서 나오는 소화효소도 줄어들어 췌장 효소 소화제를 복용해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혈당 조절도 잘되지 않아 당뇨의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병성 케톤산증도 겪고 있었다. 이 질환은 때론 호흡곤란, 혼수 등 불가역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이차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젊었을 때 사고로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다. 만일 당뇨가 지속돼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생긴다면 남은 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갖고 있었다. 형편도 어려워 서울 갈 처지가 못됐다.

김 씨는 최 교수와 상담 끝에 췌장이식 수술을 결정했다. 그간 부울경 지역에서 췌장이식 수술은 2013년 부산대병원에서 단 한 건 있었을 뿐 그 이후에는 전무했다. 해서, 부울경 지역에서 췌장이식을 원하는 환자들은 모두 서울로 향해야만 했다.

국내에서의 췌장이식은 1992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작했다. 이 병원은 지금까지 300회 이상을 시행했으며, 지금도 국내 췌장이식의 65%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이 병원에서 2년간 췌장이식을 담담했던 최 교수가 양산부산대병원에 부임하면서 부울경 지역에서도 수술이 가능해졌다. 그는 부임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췌장이식 수술을 4건이나 성공했다.

■올들어 췌장이식 수술 4건 성공

최 교수는 췌장이식 후 발생하는 여러 합병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북유럽이나 브라질에서 시행되고 있는 새 수술법을 연구했다. 기증받은 췌장과 (췌장과 바로 붙어있는) 십이지장을 소장과 방광에 붙이는 기존의 방법 대신 환자(김 씨)의 십이지장에 붙임으로써 후유증 없이 이식을 성공했다. 이는 국내에선 처음 시도된 방식이었다.

이 수술법은 내시경을 통해 거부반응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십이지장에 붙임으로써 좀 더 생리적이다. 방광에 붙이던 기존의 방식이 초래하는 여러 부작용(산증·방광염·역류성 췌장염)이 전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이식된 장기가 대장의 뒷쪽인 후복막에 위치함으로써 소장에 연결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장 유착의 가능성도 매우 낮다.

김 씨는 췌장이식 후 현재 당뇨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다. 경구로 복용하던 췌장 소화효소를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수술 전 만성 췌장염으로 인해 심각했던 복부 통증도 상당히 완화됐다. 거부반응을 평가하기 위해 내시경을 통한 조직검사를 시행해도 아주 정상적이었고 면역억제제 사용에도 신장기능 손상이 전혀 없다.

심모(57) 씨는 당뇨로 인해 신장이 망가져 지난 6월 부인의 기증으로 신장이식을 받았다. 이후 신장 기능은 매우 좋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당뇨는 더 심해져 하루에 50단위 이상의 인슐린을 투여받아야만 혈당이 어느 정도 유지됐다. 때로는 저혈당 증상에 빠져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적절한 조치없이 지금 상태로 계속 간다면 이식받은 신장의 수명이 짧아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최 교수는 신장이식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췌장이식을 권유해 지난달 20일 췌장이식을 단행했다. 대성공이었다. 지금 심 씨는 어떠한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도 혈당이 정상 범위로 유지되고 있다. 당화 혈색소 수치도 이미 정상으로 떨어졌다. 앞서 이식받은 신장에서도 이전에 보이던 소변의 당성분이 검출되지 않고 있다. 인슐린으로부터 해방돼 이제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맘껏 맛보며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타 장기와 달리 대기시간 짧아

췌장이식은 신장이나 간 이식과는 달리 대기시간이 매우 짧아 환자가 등록만 하면 대부분 6개월 내 췌장이식을 받을 수 있다. 김 씨의 경우 운이 좋아 등록한 지 24일 만에 기증받았다.

최 교수는 "모든 당뇨병 환자가 췌장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췌장이식만이 당뇨병을 완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5년여 만에 간이식 200회를 달성한 양산부산대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이번에 췌장이식을 새로이 선보임으로써 부울경 지역의 장기이식 메카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도움말= 최병현·양산부산대병원 장기이식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