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여름 수능을 100여 일 앞둔 시점 모자를 푹 눌러쓴 남학생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마스크와 함께 양쪽 턱에는 가제를 댄 채 아예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순간 분위기 파악이 안 돼 남학생과 보호자를 번갈아 쳐다보자 눈치를 살피던 보호자가 말문을 열었다. 자신을 아이의 아버지로 소개한 후 "이렇게 심한 여드름도 있습니까. 얘가 수능이 코앞인데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죽고 싶어하는데 미치겠습니다. 피고름이 줄줄 납니다. 이런 여드름도 있는 겁니다. 무슨 병이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드름이라는 질환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피부 트러블이나 사춘기 때 이마나 볼에 블랙헤드나 뾰루지가 조금 생기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드름 환자의 10명 중 1, 2명은 5~10㎜ 크기의 '왕여드름'이라고 하는 결절이나 농이 배출되는 낭종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재발이 잦아 치료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흉터를 남기면서 치유되는 경우가 흔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여드름을 동반하는 피부질환은 스트레스 유발과 함께 피부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태나 수면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피부 표면의 피지 분비량이 특히 많이 증가하고 피부 장벽의 회복 속도가 매우 저하되기 때문에 여드름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며 이는 심하게 악화되기도 한다.

여드름이 지속되면 외모에 관한 자존감이 낮아지고 열등감마저 느끼게 돼 대인관계를 기피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성격에 따라서는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여드름만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환자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 또한 의사인 나의 몫이다. 이런 경우엔 정신건강의학과와의 협진을 병행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남학생은 그해 수능을 쳤고,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드름 치료를 위해 매달 부산으로 내려왔다. 너스레를 떨며 내가 보고 싶어 예약 날짜만 기다리다 치료하러 이곳까지 오는 거라 말은 했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여드름 치료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임을 누구보다 난 잘 알고 있었다.

염증이 심하게 생긴 부위는 결국 흉터가 남았다. 병변 내 스테로이드 주사, 혈관 레이저, 프렉셔널 레이저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지금도 흉터를 개선하고 있다. 한 번 생긴 흉터를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금씩 흐려지게 할 수는 있기에 이 친구는 이런 방법으로 본인의 모습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송마가렛·부산대병원 피부과 임상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