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에 국가방역망이 뚫리면서 삶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불필요한 외출이나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소비가 위축돼 중소상공인들은 생업에 위협을 받고 있다. 늘 문병객으로 북적이던 병원 풍경도 한적하기 그지없다. 가짜 환자로 행세하며 보험사기를 벌이는 사람들까지도 병원을 기피한다고 한다. 이런 일상적인 삶의 변화는 다름 아닌 감염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초래됐다.

두려움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인간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성서에도 신구약을 통틀어 '두려워 말라'는 구절이 445번이나 반복될 정도로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슬픔을 압도한다. 해서 메르스 사태의 공포가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압도했다는 말은 옳다. 두려움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감정이기도 하다. 생존의 위험에 직면해서 느끼는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생존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려움은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경고이기에 인간은 두려움을 통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고, 위험에 맞서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성취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반면 두려움이 과도하면 오히려 필요 이상의 고통을 야기해 사회적 활동을 위축시킨다. 현재 메르스 사태에 임하는 우리의 사회적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정부를 믿고 안심하다가 믿었던 정부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절망하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상태에서 느끼는 포기공포와 흡사하다.

우리 사회는 상황에 따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던 진실을 감추는데 익숙하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을 직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를 축소·은폐하기도 하고 때론 과장된 희망이나 낙관으로 본질을 왜곡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아 사태는 예상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 급기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진실을 감추는 또 다른 이유는 상황을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오만 때문이다. 자만심이나 오만은 자신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다. 과신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전지전능감의 발로다. 스스로 전지전능한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를 정신의학에선 미숙한 유아적 행태로 판단한다. 유아적 행태에서는 참다운 소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메르스 사태는 따지고 보면 진실을 축소·은폐하는데 익숙한 우리 사회의 병폐와 맞닿아 있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과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의 오만과 자만심을 보면서 그렇게 느껴진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따르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두려움의 실체를 과소평가한 오도된 자만심과 오만에서 비롯된 소통의 부재가 이번 메르스 사태의 본질이다. 호미로 막을 상황이 가래로 막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과 영락없이 빼닮았다.

두려움은 그 실체를 정확히 직시할 때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두려움의 실체를 정확히 직시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신뢰에 기초한 진솔한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진솔한 소통은 통찰지향적 문제 해결의 원리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통찰지향적 문제 해결의 원리가 일상화돼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그 실체를 직시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렇게 해서 국민을 통합하고 경제대공황을 극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사회가 메르스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 소통의 부재라고 지적할 정도로 진정한 소통에 인색했다.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이 격언이 불변의 진리임을 다시 한 번 우리들에게 일깨워줬다.

정영인·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