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물 치료 후 사회복귀 정신재활요법 시행
- 한시적 수입에도 복지혜택 축소로 자립 막아
- 가벼운 약물요법도 편견 무서워 대부분 기피
- 진료경력에 취직·승진 불이익…암 보험도 거부
- 기록 안 남는 Z코드는 처방 못 받아 불편

만성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인 김상훈(48) 씨는 증상이 악화돼 입원 치료 후 퇴원을 했지만 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일용직이건 아르바이트건 소득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한 달에 몇십 만원 나오는 기초수급자로서 받는 복지혜택이 사라지는 현행 제도 때문이다. 정신질환과 관련,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복지정책인 것이다.

조현병은 전 인구의 1% 정도 유병률을 보이는 흔한 뇌 질환이지만 뇌의 기질적 이상이 주 원인으로 인식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치료로는 약물치료, 정신치료, 정신재활요법 등이 있다. 약물요법이 가장 중요한 치료이다. 하지만 망상, 환청 등 양성 증상에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사회적 위축, 정서 둔마(무뎌지고 마비됨), 의욕 저하 등 음성 증상에는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호전되면 사회복귀를 위한 기술훈련, 직업재활과 같은 정신재활요법을 받는다. 대부분 환자들은 이런 치료를 충분히 받으면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은 가능해지고 직업수행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회복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 일용직으로 한시적인 소득이 생기면 복지 혜택은 축소되거나 사라진다. 이를 보완하는 방안이 일부 마련돼 있다 하나 기초수급자 입장에선 사회적응 단계에서 자칫 중도 탈락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과감하게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제도는 환자의 자립을 도와주는 생산적인 복지가 아니라 오히려 자립을 방해하는, 현실과 괴리된 잘못된 정책인 것이다. 김원묵기념봉생병원 제영묘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정신재활을 돕는 방식으로의 발상의 전환을 통해 환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세심한 복지정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과 관련한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는 또 있다.

6년차 직장인 이은경 씨는 요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잠을 자기 위해 늦은 시각까지 운동을 해보지만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잠을 위해 와인을 한 잔씩 마시다 이제는 술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해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담당의는 이 씨에게 수면제 단기 처방을 제안했지만 이 씨는 난색을 표했다. 가벼운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힌다는 사회적 편견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부산의료원 윤경일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을 의학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이고 미신적인 관심에서 보는 경향이 아직 강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의 진료 경력은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많다. 당장 암보험 가입이 거부당한다. 취직과 승진에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정신질환자가 암에 더 잘 걸린다는 의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데도 말이다. 이런 현실은 오래된 편견에서 비롯된 영향이 크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데도 자살의 주 원인인 정신 질환을 방치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에는 간단한 정신과적 상담만 받아도 표준 질병 분류상 정신질환을 의미하는 F코드가 부여됐다. 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Z코드(일반 상담)를 도입했다. Z코드는 정신과적 치료는 필요하나 기록으로 남지 않는 코드이다. 문제는 Z코드의 경우 순수 상담치료에 국한되고 약물처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가벼운 정신장애라 할지라도 약물처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불면증을 비롯 불안증, 적응장애 등도 약물치료를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 제도는 시행된 지 2년이 지나도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이다.

윤 과장은 "불면증과 같은 가벼운 정신질환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심리검사나 약물치료를 Z코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도움말= 제영묘 김원묵기념봉생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윤경일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