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후 서면교차로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목련으로 기분이 좋아져 진료실에 들어왔다. 오후 첫 환자는 목련 꽃잎처럼 하얗고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젊은 여성이었다. 단정하고 멋스러운 단발머리의 그녀는 멋을 잔뜩 낸 투피스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들어왔지만 약간은 겸연쩍은 듯했다. 자세히 보니 미간을 찌푸리고 하얀 얼굴색은 빛이 나지 않고 조금 갈색 빛이 돈다.

'새내기 회사원이었다. 2월부터 종일 연수를 받느라 힘들었다. 배변 때 조금씩 피가 묻어나고 항문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달부턴 새 업무를 배우면서 더욱 긴장이 됐다. 이때부터 피가 아예 뚝뚝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 볼일을 볼 수 없었다. 아랫배도 답답했다. 항문은 얼얼하고 엉덩이는 묵직해 불쾌했다. 식욕도 사라져 식사를 잘 할 수 없었다. 일도 미숙해 거의 야근이었다. 회식 다음날 배변 땐 과음으로 통증이 심하고 출혈이 심해 물총 쏘듯했다. 하지만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출혈로 인해 얼굴빛이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 설명을 다 듣고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니 목련꽃이 피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련은 봄에 꽃잎이 떨어진 후 가을엔 잎마저 털어낸다. 세찬 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나서야 희고 순결한 꽃을 피운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인생이 어디 녹록하던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렵고 힘이 든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힘들어도 고난을 부둥켜 안고 나아가야 하는 게 인생 아니던가.

검진 결과 항문 안에는 내치핵이 있으나 심하지는 않다. 항문 입구는 긴장이 많이 돼 있고 항문 뒤쪽으로 깊게 찢어져 있다. 반복돼서인지 염증과 함께 한껏 예민해져 매우 아프게 보였다. 찢어진 곳의 바깥 쪽으로 조그만 돌기도 보인다. 검사할 때 촬영한 화면을 보고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더욱 얼굴을 찌푸리며 비를 맞아 떨어진 목련꽃잎마냥 어두워진다.

치열은 굳은 변을 자주 보는 경우 흔히 발생한다. 처음엔 잠깐씩 화끈거리다 시간이 지나면 잦아지며 매우 아파온다. 배변 후에도 한참동안 아리한 느낌이 든다. 이때 치료를 받지 않고 다이어트를 반복하든지 음주를 하면 출혈이 늘고 심한 통증이 온다.

치열 초기에는 생활교정과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다. 만성화돼도 덜 심한 경우 입원 대신 국소마취 후 간단히 수술을 받고 주사요법을 병행한다. 진행 중일 땐 충분한 마취 후 수술을 받고 다음날 퇴원할 수 있다. 수술 후 통증은 없다. 치료를 마친 그녀는 더는 아픔에 찌푸린 모습이 아니다. 막 피어나던 목련 꽃잎같이 새하얗게 빛났다.

신명철 한마음항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