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이 매우 가려워요." 얼마 전 한 중년 남자가 잔뜩 찌푸리고 찾아와 골진 주름사이로 한 말이다. 벌써 두 해가 지났건만 계속 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선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예민하고 초췌해 보였고, 삶의 중압감에 찌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온이 내려가자 낮에도 가렵고 따가워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간단히 항문경 검사를 해 보니 항문주위에 온통 상처투성이다. 주위는 붉게 부풀어 있고 진물이 나기도하고 헐기도 했다. 상처에서 피가 나는 곳도 있었다. 항문 안에는 치질이 커져 있었고 치열의 흔적도 보였다.

항문 소양증은 일을 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하다 일이 끝나고 쉬려고 할 때 가렵다. 잠을 청하려고 할 때 특히 심해진다. 새벽녘에 잠을 자주 깨워 사람을 피곤하고 예민해지게 만든다. 간질여주는 것만으론 증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덧나 통증과 가려움증이 심해진다. 수술로 잘라낼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다른 이에게 대신 긁어주기를 부탁할 수도 없다. 오롯이 나 홀로 감내하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황혼 초입 무렵 만난 또 하나의 난관이다. 그래서 혹자는 인생의 어려움을 가려움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신체나 정신에 모두 쓸 수 있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떤 문제점이나 슬픈 일을 함께 어루만진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야 그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있고 같은 어려움이 오지 않는다. 예방을 위한 노력까지 더해지면 더욱 좋다.

항문 가려움 역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항문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가장 많다. 전신 질환이나 대장 질환에 의한 경우도 더러 있다. 항문 질환에는 치질, 치열, 치루 등이 있으며, 이들의 원인으로 배변장애를 들 수 있다. 결국 새로운 상처나 반복되는 상처를 덜 내게 하기 위해선 배변장애를 해결하면서 항문 주위 염증을 치료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은 항문의 긴장을 덜어주니 특히 유념하면 도움이 된다. 고섬유 식사와 적절한 운동이 필수다. 온수 좌욕을 하면 상처의 치유를 돕고 항문 주위 피부가 습기를 머금게 하여 피부를 건강하게 한다. 새로운 상처가 덜 나도록 하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 진료실을 찾은 그 중년 남자는 살짝 미소를 띤 채 들어왔다. 몇 해째 괴롭혀오던 증상이 한결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일을 할 때 손이 가지 않아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고 잠을 잘 잘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며 약간은 들뜬 음색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루하루 편안해져 가겠죠"라며 의욕에 넘치는 그의 모습은 더는 예민하고 초췌한 모습이 아니었다. 삶의 중압감에 힘들어하던 모습은 더욱 더 아니었다. 진료실을 나서는 뒷모습이 힘찬 일꾼이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신명철·한마음항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