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신호 대기 중에 급한 문자가 왔다. 간단히 몇 글자 답을 보낸다는 것이 신호가 바뀌는 통에 손가락이 헛나가면서 자판을 누르다만 채로 전송되고 말았다. 잘못된 내용을 황급히 수정해 다시 문자를 보냈지만 상대의 오해가 신경 쓰여 마음이 편치않다.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더 찍어 '남'이 되어버린 꼴이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제 감정만 실어서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간혹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오해들이 잦다. 아무리 상대의 생각을 헤아려 본다고 한들 일단 문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두뇌가 먼저이니 '내 식'으로의 해석이 우선이다. 그래서 종종 별것 아닌 문자에도 오해가 앞서고 생각이 깊어진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함께 일하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끝까지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시길!'이라고 답이 왔다. 그 날 따라 처리가 어려운 일로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있던 터라 문자는 부풀려져 다가왔다. '아니, 내가 끝까지 잘해내지 못할 거라는 거야?' 물론 평소 그 친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오해는 오래가지 않았다.

'너는 잘할 수 있어, 반드시 성과를 낼 거야. 그런 만큼 끝까지 잘할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한껏 보여줘!' 이렇게 따뜻한 응원을 담고 있다는 걸 익히 알면서도 '끝까지 잘해야 잘하는 거지 하다가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끝까지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을 거야' 요런 식으로 이해하니 문자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일이 풀리지 않아 만사를 비아냥대고 싶었던 아침. 문자해석은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아무리 이모티콘 남발하며 멋을 부려도 진심을 그대로 담아내기가 어려워 어떨 때는 한참 생각에 잠길 때도 많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역시 깊은 생각 후에 보내는 문자는 확실히 실수가 적다. 행간의 의미까지 전달되니까. 빠르고 신속한 것은 매우 편리하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란 두고두고 곱씹는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부르기도 한다.

연말이 다가오며 날이 추워지니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절로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이하 생략)'. 여기까지야 모를 리 없겠지만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서 오늘은 그다음 문장에 더 애착이 간다.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이하 생략)'.

한해가 다 갔다고 하지만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쌓인 오해를 정리하고 맺힌 갈등을 풀어내며 용서할 기회. 주눅이 든 나 자신을 격려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다시 도전해 볼 기회. 아픈 이웃을 돌아보며 힘든 이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는 사려 깊은 기회. 아직 시간은 다 끝나지 않았다.

유정임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