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에 고장이 생겼다. 쉴 새 없이 컴퓨터를 쓰고 온종일 운전을 하고 저녁이면 실림을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학대하다 보니 팔들도 아우성을 칠 때가 되었다. 안쪽으로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간간이 있더니 무거운 것을 들기가 힘들어졌다. 그저 그러려니 참고 넘겼는데 석 달쯤 지나자 불편이 극에 달했다. 짬을 내 마음먹고 전문병원을 향했는데 처방해 준 약이 맞지 않는지 속이 거북하고 편치 않다. 병원과의 거리가 좀 멀다 싶어서 이번에는 가까운 병원을 다시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두 번째 병원. 그런데 의사의 진료가 영 마뜩잖다.

"다른 병원에서 약을 한 보름 먹었는데 속도 안 좋고 그때 뿐이라서요." "그럼 주사 맞으셔야죠." "아! 제가 주사를 좀 두려워해서 그러는데요. 아프지 않을까요?" "주사가 무서우면 평생 그렇게 사실 수밖에요!"

농담도 아니고 시비도 아닌 퉁명한 말투가 영 개운치 않다. 나는 분명히 주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의사는 거기에 대한 답이 아니라 주사에 대한 내 반응을 질타하고 나섰다. "아프긴요. 조금 따끔해도 참을만 해요"라던가 "약으로 안 되면, 힘드셔도 이제는 주사요법을 쓰셔야 합니다" 등등. 얼마나 많은 종류의 대답이 있을까! 주사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격려를 기대한 나에게 의사는 면박을 주고 있다.

"주사가 두려우시면 그냥 약 받아가세요. 잘 낫지 않겠지만." 처음이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약을 먹고 3일. 한결 약이 잘 받는 것 같아 다시 그 병원을 찾았다. "약이 맞는지 속은 편하네요. 팔도 좀 부드러워진 거 같고요." "그거 약효과라 잠깐뿐이에요. 주사가 무서우시다니. 오래 걸리시겠네요."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 병원은 절대로 오지 않으리라.

몇 년 전. 강연에 나섰다가 한 대학생이 던진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강연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이 방송인은 전문직인가? 서비스직인가? 하고 내게 질문했다. 무어라 대답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그 후로 그 질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방송일에 탄력을 받던 30대 중반의 어느 날. 내 프로그램에 시비를 거는 한 청취자가 있었다. 매주 토요일. 그이는 생방송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확히 전화를 걸어왔다. 작가는 그 청취자의 넋두리를 항상 한 시간쯤 견뎌가며 무던히 들어 주었는데 어느 날 곁에서 지켜보던 내가 짜증이 나 한소리를 거들었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다른 채널 들으시라 해!"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방송인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전문직 종사자'라고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보아주는 사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방송은 어느 개그맨의 말대로 정말 의미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서비스직과 전문직의 한끝 차이! 사람 사이를 넘나드는 모든 전문직이야말로 서비스직의 태도를 기본으로 갖춰야 할 일들이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나는 '엄마'라는 이름의 전문직과 서비스직을 겸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만의 김치찌개 끓이기 기술로 전문성을 뽐내다가 가족 누구라도 나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를 벗을 수 있도록 서비스직의 가치를 뽐내기도 한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기술이나 전문지식보다 마음이 먼저 가는 서비스와 배려의 정신이 사람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 누군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방송인이 되는 것. 누군가의 아픈 상처에 새 살을 돋게 할 격려와 위안을 주는 방송인이 되는 것. 나는 서비스도 잘하는 전문방송인을 꿈꾸며 산다.

유정임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