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폐쇄성은 정자세포 채취해야
- 부부합의 통해 정자은행도 고려
불임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결혼 7년차 부부 김모(40) 이모(여·35) 씨. 그동안 임신을 위해 여러 가지 요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여성 쪽 탓으로 여겼으나, 정액검사 결과 남성 쪽에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은 고환에 정자가 거의 없는 '무정자증'이었다. 게다가 김 씨는 치료하기 힘든 비폐쇄성 무정자증으로 나타나 암담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입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늦은 결혼으로 인해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불임 부부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불임은 전체 가임연령의 약 15%에 이른다. 이들 중 남성 원인은 약 40%로 알려져 있다. 또 무정자증은 보통 가임 남성의 1%, 불임 남성의 10~15%에서 발견된다. 신혼 부부 20쌍 중 1쌍이 '씨 없는 수박' 문제에 봉착하는 셈이다. 이들이 입양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정자은행이 거의 유일하다.
불임치료 전문인 세화병원(병원장 이상찬)의 김재명 불임의학연구소장은 "무정자증은 크게 폐쇄성과 비폐쇄성 두 가지로 나뉘는데, 85%가 폐쇄성이고 15%는 비폐쇄성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폐쇄성 무정자증은 정자가 정상적으로 생성되지만 사정 관련 장애 또는 이동통로 막힘 때문에 외부로 배출되지 못하는 경우다. 따라서 원인을 찾아내 보정하면 치료할 가능성이 높다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김 씨의 사례처럼 비폐쇄성은 호르몬 분비의 염색체 이상이나 선천적 요인 등으로 인해 고환 기능이 극도로 떨어진 것이라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고환조직에서 정자를 채취하면 정자 주입술로 수정시킨 후 임신을 유도할 수 있다. 고환에서 정자를 얻지 못할 경우에도 원형정세포(미완성 정자세포)를 분리해 성숙 난자에게 주입해 수정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한 임신율은 세계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비폐쇄성 무정자증으로 고환에 정자나 원형정세포가 없을 경우 등에는 거의 포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특단의 조치'로 정자은행에서 다른 사람(비배우자)의 정자를 받아 인공·체외수정으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 정자는 감염성 질환 여부에 대한 선별검사로 이상이 없는 정자만을 일정 기간 동결 보존하고 정자은행에 비축한 후 사용한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정자 매매가 합법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윤리법상 기증된 정자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정자은행 운영에 상당한 애로점이 있다. 정자를 기증받기 힘들어서다. 또 정자은행을 운영하는 병원은 대부분 서울이라 부산 경남지역 환자들은 이용에 불편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세화병원이 지난달 정자은행을 설립해 관심을 모은다. 이곳 정자은행은 현재까지 기증받은 정자가 80개에 이른다. 이상찬 병원장은 "지금까지 불임 남성 중 자신의 정자가 없는 경우에는 임신을 거의 포기하거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서울 쪽으로 가는데, 이제는 부산 경남 환자들에게도 임신의 희망을 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명 소장은 "비배우자 정자은행을 통한 방법은 해당 부부의 합의(동의)가 전제조건이다. 또 정자 공여자에 대한 혈액검사 등 건강검진이 올해부터 법규정으로 의무화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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