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밑 빠지는 병'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골반장기 탈출증'이라는 질환이다. 여성 비뇨기과를 전공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남들에게는 말 못하는 '속 사정' 때문에 고민 고민하는 어머님 할머님 환자들이 나를 반겨줄 때이다. 특히 '골반장기 탈출증' 환자들은 여성 비뇨기과 의사들을 만나면 반가워한다.

골반장기 탈출증 환자들은 오래 서 있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 뭔가가 밑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서 거울을 통해 밑을 들여다보면 불그스름한 탁구공이나 테니스공 크기의 뭔가가 질 밖으로 빠져나온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하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워 아무한테도 말도 못하고 불편함을 참고 견뎌낸다.

몇 달 전에 진료실에 찾아온 할머님도 20년 전부터 아기 머리만 한 무엇인가가 밖으로 나와 불편하고 불쾌하였으나 같이 사는 따님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워 참고 지내셨다고 했다. 그러다가 질 밖으로 방광의 대부분이 빠져나오면서 신장에서 방광으로 내려오는 소변의 배출이 막혀 신장이 팽창하는 수신증과 고열, 오한이 동반되는 급성 신우신염이 발생하여 입원 치료가 필요하였다. 진찰해보니 오랫동안 질 점막이 밖으로 빠져나와 옷과 피부 접촉 등으로 질 점막에 염증과 궤양성출혈 소견도 관찰되었다.

여성의 골반 안에는 방광 자궁 직장 등이 들어 있으며 이를 골반장기라고 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골반 장기는 이를 지지하는 근육, 근막과 인대 등에 의해 제자리를 잡고 있지만, 출산 노화 수술 질환 등으로 골반장기를 지지하는 근육 근막 인대가 손상돼 아래로 처지면서 골반장기들이 질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방광이 빠져 나오면 '방광류', 자궁이 빠져 나오면 '자궁탈출증', 장과 직장이 빠져나오면 '직장류' 또는 '장류'라고 한다. 자궁 절제술을 한 뒤에도 질 천장이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질 천장 탈출증'이라고 한다. 국내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골반장기 탈출증 환자는 19∼72세 한국인 성인 여성 10명 중 3명꼴(31.7%)로 적지 않지만, 문제는 질환 특성상 가까운 가족에게도 말하기가 어려워 고통 속에서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골반장기탈출증을 예방하기 위해선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빨래를 하거나 청소하기, 무거운 시장바구니 들기 등과 같이 복압을 상승시켜 골반근육을 약화시키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간이 수레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골반장기 탈출증이 심하지 않으면 골반 근육 운동 즉 흔히 말하는 케겔 운동으로 효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골반장기 탈출증은 해부학적인 구조물의 약화가 원인이므로 수술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요실금이란 말도 10년 전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이제는 골반장기 탈출증도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하다 질 밖으로 뭔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가까운 전문의를 찾아 '밑'을 한 번 만 보여주기를 바란다.

한지연·양산부산대병원 비뇨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