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싱은 말이여. 바람을 가르는 빠른 팔. 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쉭. 입은 가만히 있자녀. 쉭”
2004년 개봉한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 출연한 배우 박철민의 대사다. 복싱을 이야기할 때 이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복싱은 사각의 링 안에서 손으로 상대방의 신체 전면 벨트라인 위쪽을 타격해 승패를 결정하는 스포츠다.

	박용운 관장. 김민훈 기자

그렇다면 복싱은 무예일까.
지난 16일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의 장정구복싱다이어트헬스클럽에서 만난 박용운(55) 관장은 격투의 가장 기본이 복싱이라고 설명했다.
“복싱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먹이를 잡고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복싱은 현재 수많은 무예의 기초가 되는 무예인 셈이다.
복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무예보다 승패를 따지는 스포츠로 자리 잡아 왔다.
기원전 고대 올림픽에서부터 복싱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니 스포츠로서 역사도 오래됐다.

●복싱 신동이 나타났다
박 관장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다. 1년 만에 부산 무대를 휘어잡은 그는 ‘복싱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복싱에서 천부적 소질을 나타낸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내로라하는 선배를 제치고 전국체전에 출전할 부산 선수로 뽑혔다.
박 관장이 등장하자 당시 부산 복싱계에서는 ‘이 신인이 전국체전에서 우승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 줄을 이었다.
그는 부산 대표로 선발된 뒤에도 자체 평가전을 치르는 촌극 끝에 상대 선수를 심판 전원일치로 이기고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1981년 열린 제62회 전국체전 복싱 밴텀급에서 그는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나라 복싱 국가대표로도 선발된 그는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1984년 3월 17일. 그는 아마추어 복싱을 끝내고 프로복싱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프로 무대에서 무려 36번의 경기를 했다.
그 사이 WBC(세계복싱평의회) 랭킹 4위, IBF(세계복싱연맹) 랭킹 2위 등에 올랐다. 총전적 36전 32승 1무 2패 1무판정.

	박용운 관장의 펀치를 받는 국제신문 김진룡(왼쪽) 기자. 김민훈 기자

●묵직한 크로스카운터
팀매드 소속 격투기 선수 유상훈(28)과 함께 박 관장으로부터 복싱의 기초부터 카운터 펀치까지 배웠다.
오랜 세월 닦아온 그의 펀치는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했다. 간단하게 몸을 푼 뒤 이어진 스파링에서 ‘퍽’ 소리가 이어졌다.
일반인들은 그의 펀치를 제대로 받기 힘들 것 같았다. 우선 합을 맞추는 것부터 어려웠다. 어떤 식으로 펀치가 들어올 것이라 사전에 이야기했지만, 허리에서부터 뻗어져 나오는 그의 묵직한 펀치를 받아내기 힘들었다.
현역 선수인 유상훈도 그동안의 배워왔던 복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움을 느꼈다.
유상훈은 “내가 지금까지 하던 복싱은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오늘 어깨, 허리 쓰는 방법 등 세세한 부분을 배웠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막간을 이용해 자신의 필살기를 유상훈에게 전수했다.
그의 필살기는 ‘크로스카운터’다. 팔을 곧게 앞으로 뻗는 스트레이트와 좌우 측면에서 크게 들어오는 훅 사이의 길로 들어오는 펀치다. 그는 크로스카운터를 치면서 마지막에 주먹을 꺾는다. 여기서 굉장한 힘이 나온다.
현역 시절 디딤발을 앞으로 넣고 허리와 함께 들어오는 그의 크로스카운터에 수많은 선수가 당했다.
박 관장은 “이 기술을 터득하고 난 뒤에는 10번을 싸우면 8번을 KO로 이겼다”고 이야기했다.
우슈 고수인 유상훈도 이 기술을 단번에 익히지는 못했다. 스텝과 더불어 허리를 이용해 뻗는 펀치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유상훈은 “이대로 연습하면 오는 3월 출전하는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은 박 관장과의 일문일답.

-복싱을 시작한 계기는.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벌기 위해서는 복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민 스포츠가 복싱이었다. 복싱하면 많은 돈을 벌고 출세할 수 있었다.

-복싱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요즘 사람들은 지겨워하는 기본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기본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모래성 같이 무너진다. 지도자가 가르쳐주는 기본 그것만 연습해야 한다. 잽을 가르쳐 주면 잽만 온종일 연습했다. 원투를 한 달 가르쳐주면 한 달 동안 원투만 했다. 이외 집 뒷산을 하루에 다섯 번 정도 뛰어서 오르내리는 등 체력 훈련을 함께 했다.

-복싱의 매력은 무엇인가.

▶복싱도 중독이다. 미친 듯이 샌드백을 두드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운동선수들은 단계를 거쳐 올라가면서 매력을 느낀다. 나는 복싱에 미친 사람이다.

-인기를 끄는 종합격투기에 비해 복싱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요즘 다시 바뀌는 추세지만 포인트 위주의 경기 방식이 문제다. 잽으로 툭 건드려도 점수를 주니까 복싱 특유의 파이팅이 사라졌다. 점수제로 하다 보니 선수들이 안일하고 편안한 권투를 추구한다. 또 이렇게 되면 KO가 안 나는데 어떤 복싱이 재미있겠나.

-그럼 복싱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과거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헤드기어를 썼는데 이제는 착용하지 않는다. 점수 위주의 경기 방식도 차츰 개선돼야 한다. 글러브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복싱 글러브 무게는 8~10온스 정도다. 과거 내가 시합할 때 6온스를 썼다. 두께가 얇아 한 대 맞으면 머리가 띵하다. 두꺼운 글러브로 여러 대 맞으면 충격이 누적돼 건강에 좋지 않다. 차라리 얇은 글러브를 사용해 한 번에 맞고 쓰러지는 게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복싱 룰 말고 다른 점은 없는가.

▶한국 복싱 발전을 위해 복싱계 화합도 필수다. 현재 국내 복싱 기구만 6개 정도 있다. 옛날에는 하나였다. 이들이 모여서 화합해야 우리나라 복싱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김진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