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공수도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수도에 대한 기억은 학창시절에 봤던 일본 만화책 주인공의 친구가 하는 운동 정도로 남아있었다. 아니면 일본 무술이라 배격당하며 태권도에 밀리던 운동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본, 이 무예는 신기했다. 기존 상식을 뒤엎는 무예였기 때문이다. “공수도는 직접 타격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지난 2일 부산 해운대구 대한공수도총본부에서 만난 정일홍(42) 관장이 공수도를 설명했다. 그에게 직접 공수도에 대해 듣고 배우자 그 말뜻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정 관장이 내지르는 주먹에는 상당한 속도가 실렸다. 그러면서 그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목표 앞에서 멈췄다. 직접 타격하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어려워 보였다.

실제 그가 눈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뻗었지만 정확하게 얼굴 3~5㎝ 앞에서 멈췄다. 상당한 내공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정일홍 관장의 주먹이 기자의 눈앞에서 멈췄다. 김민훈 기자

●아버지의 무예

그는 자타공인 공수도 고수다.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공수도에 입문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한공수도연맹의 모태인 세계무도원를 설립한 정도모 전 대한공수도연맹 회장이다.

9살 때부터 공수도에 입문한 정 전 회장은 2007년 대한공수도연맹을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로 등록시키는 등 공수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국내 공수도 고수 중 한 명이다.

정 관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장에서 살다시피했고 자연스레 공수도로 진로를 정했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고수를 찾아서’ 시리즈 인터뷰에서 “2남 2녀를 뒀는데 공수도를 배우는 사람이 없어 자식들을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아버지의 가르침 아래 정 관장은 선수 시절 전국대회에서 10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2000년도까지 공수도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국가대표 지도자를 거쳐 현재 대한공수도총본부를 이끌고 있다. 정 관장은 “어릴 때부터 하다 보니 오랜 학습에 의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부산에서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수도 기초자세 시범을 보이고 있는 정일홍 관장. 김민훈 기자

●공수도는 일본 무술이 아니다

그는 공수도가 일본 무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공수도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공수도는 고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무술이다. 공수도가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학자도 있고 일본으로 바로 갔다는 연구도 있다”면서 “애초 당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해서 당수(唐手)도라 불렸는데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공(空)자를 넣은 것이다. 나라마다 수련방법도 달랐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발차기를 더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에서 공수도를 경기로 만들면서 체계화되고 다른 나라로 알려져 대부분 사람이 공수도하면 일본 무술로 오인한다”고 덧붙였다.

직접 배워본 공수도는 조금 어려웠다. 이종격투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 앞에서 주먹이나 발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정 관장은 이 점이 공수도의 매력이라 이야기했다. 그는 “공수도는 직접 타격을 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넘어선 무예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만, 종이 한 장 차이 앞에서 멈추는 게 공수도”라며 “남을 해하는 무도가 아니다. 통제를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무예다”고 말했다.

	정권 찌르기를 하는 정일홍 관장. 김민훈 기자

●코끝에서 멈춰 상대를 제압하라

공수도를 직접 배워보기 위해 팀매드 소속 격투기 선수 유상훈(28)도 함께했다.

유상훈도 공수도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앞서 만난 극진가라데와 공수도는 서로 다른 느낌을 풍겼다.

극진가라데는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타격이었다면 공수도는 멈춰야 했다.

유상훈과 정 관장의 대련이 이어졌다. 불혹의 나이를 넘은 정 관장은 20대의 팔팔한 유상훈과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유상훈이 공수도의 규칙을 조금 어려워하자 그 틈을 노린 정 관장은 순식간에 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유상훈은 정 관장에게 직접 무예를 배운 뒤 “상대 앞에서 멈춘다는 점이 다른 무예와의 차이점이다. 동작도 쉽지 않다. 극진가라데와 공수도는 결이 다른 무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수도의 비상

공수도는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비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 공수도는 오히려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2007년 대한공수도연맹이 정식단체로 대한체육회에 가입했지만 2013년 관리단체로 지정된 후 퇴출당했다. 하지만 시도지부에서는 여전히 대한공수도연맹이 활동하고 있다. 반면 대한체육회에는 2016년 창립한 대한가라테연맹이 정식단체로 가입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무대에 나설 선수 선발조차 쉽지 않다. 등록된 단체가 다르다 보니 선수들이 한 곳에 모여 시합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정 관장은 “지금 공수도 내부가 양분돼 선수 선발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국내 공수도인들이 화합하고 뭉칠 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무예로서의 공수도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관장과의 일문일답.

-극진가라데와 공수도의 다른점은 무엇인가.

▶우선 앞에 극진이란 말이 붙고 안 붙고의 차이다. 공수도는 앞에 극진이란 말이 없다. 극진가라데는 재일교포 최배달 선생이 자기화시킨 공수도다. 새로운 파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본인만의 수련법은.

▶아버지가 강조한 것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한 연습을 많이 했다. 우리 집안 교육방침은 기본에 의해서 숙달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응용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일본 중국 이란 등 해외를 다니며 수많은 대련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공수도 예의란.

▶공수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 모든 수련의 전과 후는 묵상과 인사 예절이 함께 한다. 경기할 때도 심판에게 인사하고 끝나면 인사하고 나온다. 예를 그만큼 중시한다.



-실전에서도 공수도를 쓸 수 있나.

▶공수도는 다양한 상황에서 맨손으로 생존할 수 있는 무예지만 상대를 직접 타격해 제압하지 않는다. 공수도는 통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남을 해하는 무도가 아니란 뜻이다.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상대 앞에서 멈춰 상대를 굴복시킨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