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민께서도 대한민국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쌀딩크’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지난 15일 ‘동남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하자 베트남 전역에서 박항서를 연호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박 감독이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맡을 때만 해도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부임 3개월 만에 축구변방이었던 베트남을 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이번엔 스즈키컵에서 우승하자 베트남은 박 감독에 취해버렸다. 

한·베트남 양국은 현실적으론 교역과 교류가 활발하지만 사실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으로 인해 어두운 과거가 잠재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을 때 양국 간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지만 당시 외신에서의 현지 반응은 한국이 기대했던 만큼 신통찮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박 감독이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에 베트남을 우승시키면서 양국 간 불행한 역사의 상당 부분이 해소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민간 외교관으로서 박 감독의 역할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진일보시켰음을 이번 우승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우승 확정 당시 4만 관중이 운집한 경기장 곳곳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흔들릴 정도였다. 베트남 국민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서로 얼싸안고 춤을 췄으며, 일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베트남 권력 서열 2위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서열 3위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기뻐했다. 푹 총리는 이후 시상자로 나서 박 감독에게 메달을 걸어준 뒤 다정하게 포옹했다.

박 감독도 베트남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우승 축하금으로 받은 10만 달러(1억1345만 원)를 베트남 축구 발전을 위해 쾌척했다.

베트남 전국은 2002 한일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룩했던 한국의 모습과 흡사했다. 수도 하노이와 호찌민 등 주요 도시에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퍼레이드가 이어졌고, 흥분한 팬들은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베트남 보딕(우승)’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쳤다. ‘축구 외교관’ 박 감독이 민교 외교의 결정판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결승 2차전 경기 시청률 합계가 21.9%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지상파인 SBS(18.1%)와 SBS스포츠(3.8%)가 동시 생중계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반응이다.

박 감독의 선전 열기는 고향인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박 감독의 셋째 형 삼서(66) 씨는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아부를 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뚝심으로 베트남을 우승시킨 리더십에 축하를 보낸다며 이미 우승 직후 축하 인사를 SNS로 전했다”고 말했다.  김인수 윤정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