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관에 없는 상임이사회 만들어
- 전명규 전 부회장 업무간섭 초래
- 빙속 이승훈도 후배 폭행 정황
- 49건 적발 … 관리단체 지정 권고
- ‘왕따 주행’은 고의 아닌 ‘불통탓’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빙상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2차관은 23일 서울정부청사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된 감사에서 49건이 적발돼 2건을 수사의뢰했다. 18명은 징계 대상에 올랐다.

■전명규 전횡부터 폭행까지

국가대표 선발 과정부터 문제였다. 빙상연맹은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종목의 메달 가능성을 높인다며 ‘선수 추천제’를 도입했다. 실제로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페이스 메이커’를 선발하면서 경기력향상위와 이사회 의결을 생략했다.

후원사 공모 과정도 의혹투성이였다. 빙상연맹 ‘용품계약 태스크포스’는 ‘기존 후원사와 우선협상을 한다’는 이사회 결정을 어겼다. 대신 경기복 제작사와 후원사를 특정 기업으로 교체하는 걸 전제로 논의를 진행했다. 공모 정보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도 드러났다.

빙상계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사진) 전 빙상연맹 부회장의 전횡도 밝혀졌다. 노 차관은 전 씨에 대해 “특정 인물이 빙상계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전 씨가 자신의 지위와 사적 관계망을 활용해 국가대표팀 외국인 지도자의 징계와 계약 해지에 부당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 당시 징계 요청 진정서는 전 씨의 옛 조교와 지인이 작성했다.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30)도 후배 선수 폭행 의혹에 휘말렸다. 감사 결과 그는 2011·2013·2016년 국제대회 참가 중 후배 2명에게 폭행과 가혹 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승훈은 후배에게 훈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따주행’은 불통이 부른 참사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에서 불거진 ‘왕따 주행’은 지독한 ‘불통’이 부른 참사였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경기 전날 한 선수가 백철기 당시 감독을 찾아가 ‘좋은 기록을 위해서는 노선영이 3번 주자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백 전 감독은 선수들이 합의해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선수들은 별도의 논의를 하지 않았다. 백 전 감독은 경기 당일 워밍업 전에야 선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백 감독은 또 경기 직후 논란이 일자 기자회견에서 “노선영이 경기 전날 찾아와 3번 주자로 타겠다고 말했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결국 불통으로 점철된 실패한 작전이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진 것이다.

노 차관은 “감사 대상들이 규정이나 절차 위반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결과가 좋다는 이유로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면서 “지금까진 체육계의 눈으로 스포츠 공정을 판단했다면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 대한체육회에 빙상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하라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집행부는 모두 해임된다. 대한체육회가 파견한 관리위원들이 집행부 역할을 대신한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