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인기 설움 딛고 최고스타 등극
- “컬링 미래 쥔 사명감으로 싸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안경 선배’의 안경 너머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쉬움과 기쁨이 뒤섞인 그의 눈물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팀킴’의 위대한 도전이 막을 내렸다.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이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정 감독,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초희. 연합뉴스

김은정(28)과 김영미(27·리드)-김선영(25·세컨드)-김경애(24·서드)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은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결승전에서 스웨덴에 3-8로 패했다.

스웨덴이 빈틈 없는 플레이로 점수 차를 크게 벌리자 대표팀은 9엔드를 마치고 패배를 인정하는 악수를 상대에게 청했다. 예선과 준결승에서 강호들을 모두 물리친 ‘팀킴’이 패배를 인정하는 악수를 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태극 낭자들은 아시아 컬링의 새 역사를 썼다. 아시아 국가가 올림픽 결승에 진출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이전까지 아시아 국가 최고 성적은 2014 소치올림픽 동메달(중국)이었다.

선수와 감독 모두 김 씨인 ‘팀킴’은 숱한 화제를 모으며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예선 첫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 캐나다를 물리칠 때만 하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8승 1패로 예선 1위를 차지하자 대한민국 전체가 ‘컬링 열풍’에 휩싸였다.

김은정이 스톤을 던진 뒤 스위핑 방향과 속도를 지시하면서 외치는 김영미의 이름 ‘영미’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유행어가 됐다. 억양과 톤에 따라 작전이 바뀌어 ‘영미 단어 설명서’까지 등장했다. ‘영미’를 외친 김은정의 어미니 이름도 ‘김영미 씨’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미국 USA투데이는 김은정이 안경을 쓰고 빙판을 지배한다며 정체를 숨기려고 안경을 쓰는 슈퍼맨과 비교하기도 했다. 김은정이 쓴 안경 모델은 평소보다 주문량이 5배가 늘었다.

‘팀킴’의 성공 신화는 척박한 환경에서 이뤄낸 것이어서 더 큰 감동을 선사했다. 2006년 경북 의성에 ‘의성 컬링센터’가 들어서기 전까지 국내에 컬링전용경기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내 컬링 선수들은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돼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지원하지 못하면서 대표팀은 훈련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팀킴’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손에 컬링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김은정은 “우리는 컬링 역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그 책임감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컬링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많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창=배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