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산 사직야구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야구장 1층 입구에 자리한 경비원이다. 경비원은 야구장 직원의 택배 보관, 야구장 외곽 및 내부 순찰 등의 임무를 3교대로 수행한다. 경비원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끝난 뒤 야구장 곳곳에서 쏟아지는 취객을 상대하기도 한다. 롯데가 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취객은 사장과 단장을 향해 고성방가로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경비원은 이런 취객까지 달래서 집으로 보낸다. '사직야구장 사람들'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9년째 사직야구장을 지키는 경비원 장정학(68) 씨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장 씨는 10년 전만 해도 부산 해운대에서 아내와 함께 이발소를 운영했다. 개인 사정으로 이발소를 접고 인생 2막을 연 곳이 사직야구장이다. 그는 야구장의 경비원으로 9년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다. 그 중 아직도 잊지 못하는 밤이 있다.

	사직야구장 경비원 장정학 씨. 김진룡 기자

2011년 11월 19일 자정을 앞둔 늦은 밤 야구장의 외야 쪽에 있는 뒷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가 일부러 뒷문으로 가서 문을 땄다. 그가 문을 따자마자 덩치 큰 사내가 야구장으로 재빨리 들어왔다. 그는 덩치 큰 사내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구장 사무실로 향했다. 그날 밤 세 차례나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와 동행한 사내는 바로 이대호였다. 당시 자유계약(FA)선수 신분을 얻었던 이대호는 구단과 우선협상 중이었다. 이대호는 자정을 넘기면 FA시장에 풀려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었다. 이대호는 그날 밤 구단과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다음 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

정 씨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직야구장에서 기자들의 눈을 피해 늦은 밤 몰래 세 차례나 이대호를 구단 사무실까지 에스코트했다. 그는 "기자들이 덤벼들까 봐 모르게 왔다 갔다 하느라고 신경이 곤두섰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도핑 적발로 롯데를 떠난 짐 아두치에 대해서도 그는 이상한 낌새를 미리 알아챘다. 팔팔한 미국 청년이 아프지도 않은데 야구장 로비 땅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있었다. 평소랑 달리 표정도 어두웠다.

어딘가 많이 아파 보였다. 잠시 뒤 아두치의 가족이 왔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아두치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경기 일정에 지쳐서 힘든 줄만 알았던 아두치는 몇 주 뒤 허리 치료를 위해 사용한 약물로 인해 도핑 검사에 적발됐다. 아두치는 결국 7월 초 구단의 웨이버 공시 이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입사 2개월 차 사직야구장에서 처음으로 도둑을 잡았을 때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2008년 시범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늦은 밤 폐쇄회로(CC)TV를 보던 그는 3층 입구에서 검은 그림자 세 개를 포착했다. 사내 3명이 검은색 봉지를 들고 야구장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3층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두 명은 도망갔고 한 명을 그 자리에서 붙잡았다. 아이의 손에 들린 검은색 봉지에는 선수 유니폼, 야구공, 글러브 등이 담겨있었다.

CCTV에 모든 게 찍혔고 증거물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메뉴얼대로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CCTV에서 선명하지 않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이제 막 스무 살을 지낸 아이였다. 까마득한 아이의 앞길을 생각하니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직야구장 경비원 장정학 씨. 김진룡 기자

잡힌 한 명을 설득해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오게 했다. 따끔하게 교육을 한 뒤 이들을 보내려는 순간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그는 아이들 모르게 경찰들에게 젊은 애들 앞길은 막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경찰도 그의 이야기에 결국 훈방 조치하기로 했다.

그는 입사 후 이런저런 일을 겪고 보니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는 시간이 충분히 흐를 때까지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도 꺼낸 적이 없다. 야구장의 일을 시시콜콜하게 떠들고 다녔으면 9년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 고백했다. 이제 그는 좀 쉬고 싶어 했다. 고령에 3교대 임무를 버거워했다.

올해 초 경비원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다. 협력업체에서 일을 계속하자는 제안 탓에 올해도 사직야구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올해를 마지막이라 생각한다. 남은 기간 야구장에 별일이 없으면 좋겠다"면서 "그래도 야구장을 떠나면 적적하긴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