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부산갈매기에게.

1984년과 1992년, '야구 성지(聖地)' 부산 사직벌에는 '부산갈매기'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 꼭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팀일 것입니다. 신문지 응원, 라이터 응원이 제 안방인 사직 야구장에서 처음 생겨났습니다. '아 주라'(애 줘라), '마' 등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도루왕 전준호, 슬라이더왕 염종석, '자갈치' 김민호까지 수많은 선수가 저를 거쳐 갔습니다. 그리고 고 최동원. 1984년 한국시리즈는 '철완' 최동원을 위한 경기였습니다. 아득한 기억입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한차례도 정규리그 우승을 못했습니다. '야생야사' 부산팬들에게는 오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하늘은 최고의 팬과 최악의 구단을 부산에 내렸다"고 통탄했습니다. 최고의 팬과 경남고 부산고 개성고(옛 부산상고) 등 전국 제일의 인프라가 구축됐는 데도 저는 바닥에서 허덕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꼴찌만 한다는 '꼴데', 시범경기만 이긴다는 '봄데', 2001년부터의 순위를 늘어놓은 '롯데 마법의 숫자 8888577' 등 불명예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지난해에는 소속 선수들을 CC(폐쇄회로)TV로 사찰한 것이 들통나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항명 사태'로 이름 붙은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변명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팬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사직구장을 다닌 임동욱(26·부산 금정구 서동) 씨는 "롯데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며 응원 팀을 'NC 다이노스'로 옮겼습니다. 박준석(36·부산 기장군 정관면) 씨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올해부터는 한화 경기를 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씨는 "30년 넘게 롯데를 응원했는데 한 번도 보람이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시민구단'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아마 이런 일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난해 롯데의 관중 수는 83만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 136만여 명과 대조적입니다.

고(故) 최동원 감독의 어머니 김정자(왼쪽) 여사와 최동원 팬클럽 회원들이 20일 사직야구장 앞 최동원 동상에서 추모 행사를 갖고 있다. 전민철 기자

2015년 프로야구는 오는 28일 개막합니다. 딱 1주일 남았습니다. 올해 10승 투수 장원준이 빠진 것은 손실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용병 투수 브룩스 레일리와 조쉬 린드블럼은 시범경기에서 훌륭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이종운 감독에 대한 기대감도 큽니다. 김홍태(41·부산 북구 화명동) 씨는 "올해도 꼴찌라고 생각했는데, 시범경기를 보니 기대가 된다"며 "4번 타자 최준석만 힘을 내면 올해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구도(球都) 부산의 우승 염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최동원 같은 '레전드'의 출현을 기다리는 어른들에게, 홈런 한 방에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직장인들에게, 삼진 퍼레이드에 입시 걱정을 털어놓을 학생들에게 제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올해는 부산갈매기들과 함께 힘차게 날아보겠습니다. 가을야구의 뜨거운 함성이 귓전을 간지럽히는 것 같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