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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8> 배우 배진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연극 23년 차,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1 18:42:0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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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잘 쓰는 데 도움될까 해서
- 대학 때 연극동아리 가입
- 취업 준비하다 우연히 극단행

- 인물 속에 ‘나’ 표현하는 게 연기
- ‘생계형 배우’ 출연 작품 안 가려
- 무대 지키며 예술가 양심 지킬 것

1990년대 대학로에는 40여 개의 소극장이 있었다. 작고 영세해도 젊은 연극인들이 실험정신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매일 수십 편의 연극이 올랐다. 세기말의 감상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물결은 실험적 연극이 되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연극이 최고 인기를 얻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배우 배진만이 부산 동래구 명륜동 스페이스 움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연기 인생을 설명하고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parksh@kookje.co.kr
배우 배진만(49)은 연극이 전성기를 누리던 1996년부터 부산에서 활동했다. 연극배우가 되리라 생각을 못 했지만, 뜻하지 않게 그만 배우가 되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배우가 되었다

독어독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연극을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연극 동아리를 찾아갔다. “대학 시절 열 작품 정도 공연했어요. 작품 준비를 할 때면 논쟁도 많고 서로 감정 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좋았어요. 졸업할 무렵엔 동아리 활동을 접었어요. 취업 준비를 했는데,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동기 한 명이 작품에 배우가 모자란다고 요청해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때 조명 담당자가 극단 ‘열린무대’에 계셨고, 그 인연으로 ‘열린무대’에서 배우를 시작하게 됐어요.” 회사에 취직하려다 그만 무대에 취직해버린 셈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진만.
극단 소속 배우라 해도 경제적 어려움은 숙명적이다. 소극장까지 운영하면 더 힘들다. “1년 정도 극단 대표를 맡은 적이 있는데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오면 심장이 쿵쾅거렸지요. 1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 용돈 한 번 제대로 못 드려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김윤석, 유재명 등 함께 활동하던 배우들이 서울로 진출해 톱스타가 되었다. 기회가 있었을 텐데 부산에 남은 이유는 뭘까. “결론적으로 겁이 많아서 못 갔어요. 치열한 무한경쟁에 들어가려니 두려웠습니다. 지금도 많은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 서울로 가는 경우가 많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서울도 환경이 녹록지 않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아요. 대학로도 붕괴해서 소극장이 상업 용도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서울로 간 젊은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하느라 제대로 작품을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지금은 부산에서 연극을 하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합니다.”

■무대는 탐색과 성찰의 공간

배우로 사는 데 또 하나 힘든 점은 인간관계다. 연극은 혼자 할 수 없으니 동료와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작품을 하다 서로 사이가 나빠져, 힘들 때면 연극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좋은 사람과 교류하면 즐겁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에겐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얻는 벅찬 감동보다 좋은 관계에서 오는 소소한 기쁨이 훨씬 소중하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연극을 시작했어요. 올해로 23년 차인데, 이제야 연극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 것 같아요. 캐릭터는 관객과 만나기 전 배우에게서 거의 완성됩니다. 결국 캐릭터 속에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내 속에서 그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캐릭터가 관객을 만나면 더욱 풍요로워지는 거죠.”

그동안 그는 80~90개의 배역을 맡았다. 그에게 무대란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끝없이 탐색하는 성찰의 장이자 세계로 통하는 소통의 장인지도 모른다.

15년의 극단 생활을 접고 2011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연간 네댓 작품을 한다. 급여를 받는 직장이 아닌 데다 모두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모여서 연습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립영화나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졸업작품에도 출연한다. “생계형 배우”라고 그는 말했다. 무대 위의 삶이라 해서 모두 예술이라는 수사에 갇힐 필요가 있겠는가. 배우가 아니라면 보통의 회사원이 되었을 것이라 한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를 보며 박봉과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평범한 삶이 겹쳐진다.

■묵묵히 걷는 연극의 길

지난 2월 그는 일본 고쿠라에 다녀왔다. 부산 예술가들과 재일조선적(朝鮮籍) 학생, 예술가들이 함께 행사를 했다. 조선적은 1945년 일본 패망 후 주일 미군정이 외국인등록제도의 편의를 위해 재일 코리안에게 부여한 임시국적이다. 일본은 이들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조선적 학교는 무상 공교육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춤과 노래, 풍물 공연, 연극 등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졌다. 연습 시간이 충분치 않아 사전에 화상 통화로 연습했는데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가치 있는 일에는 언제든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오는 24일부터 27일엔 극단 연의 ‘시라노 드 베르쥬락’에 출연한다. 무대라는 한 직장에 묵묵히 근속하며 부산 연극을 지키고 예술가의 양심을 실천하며 사는 배우 배진만, 그는 곧 우리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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