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 속 단어·별명·욕설 등
-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 넘어
- 위계형성 등 세상에 영향 미쳐
- 말에 담긴 정치적 행위들 분석

인간이 기분 내키는 대로 내뱉는 말에 칼이 달렸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험악한 말이 오가는 세상이다. 프랑스 언어학자 뤼시 미셸이 다양한 예시와 설명을 통해 우리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말의 특징을 전한다. 구분 짓고 차별하고 상처 주는 말, 세상을 만들고 나를 비추는 말, 살아 숨 쉬며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단어와 이름 별명 욕 사투리 인터넷 용어까지 일상 언어를 구석구석 살펴보며 ‘말하기’가 얼마나 정치적인 행위인지 흥미롭게 보여 준다.

프랑스 언어학자 뤼시 미셸의 책 ‘말의 무게’에 실린 그림작가 미리옹 말의 그림. 말이 ‘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록서재 제공

말의 힘을 경계하는 메시지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든 전해져 온 가르침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나 “입은 화의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공자는 “일평생 선(善)을 행하였더라도 말 한마디의 실수로 그 선을 깨뜨리게 된다”고 했다. 유대교 경전 미드라시에는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라는 구절이 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모로코 속담이다. 이렇게 말과 혀를 칼에 비유하며 조심할 것을 경고했으나. 현대인은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실수로 한 말이나, 별 생각 없이 한 말도 상대에게는 큰 상처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뤼시 미셸이 드는 예와 무관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별명 붙이기’ 편을 보자. 학교에서 학생들이 지어 부르는 별명은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몸무게 외모 인종 여드름 옷 스타일 말투 계층 등을 소재로 삼은 별명은 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슴 크기 때문에 ‘절벽’이나 ‘젖소’라고 불리는 여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학생은 일상에서 언어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일이다.

부정적인 별명보다 더 심한 폭력은 욕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욕하는 건 공개적인 공격이며 폭력이다. 만약 친구나 지인이었던 사람에게 ‘더러운 놈’이라는 욕을 했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러운 놈’이라는 새로운 틀에 들어가게 된다. 욕을 한 사람 역시 언제 그 틀에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사투리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는데 프랑스도 그렇다. ‘사투리란 무엇일까?’ 편은 우리와 공통점이 많다. 프랑스에서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발음이 웃긴다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은 재미있는지 몰라도, 말하는 방식을 두고 조롱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나쁘다. 프랑스 남부 사투리를 쓴다고 취업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언어차별이다. 우리나라도 취업 준비에다 서울말 배우기까지 하는 지역의 청년들이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언어차별은 인종차별과도 이어진다. 2018년 프랑스에서는 나오미 무센가라는 젊은 여성이 긴급한 상황에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통화 기록을 살펴본 결과 긴급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극심한 인종 차별적인 편견으로 대처한 사실이 밝혀졌다. 나오미 무센가의 이름과 말의 억양은 프랑스에서 백인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 목숨이 이렇게 사라졌다.

프랑스어를 아름다운 언어로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런 프랑스어에 차별과 혐오가 담긴 채 쓰이는 현실은, 평등한 언어로 꼽히는 한국어의 오늘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이 책은 말을 한다는 것이 그저 단순히 단어를 사용하거나 입에서 소리를 내거나 정보를 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말하는 행위는 구분을 짓고, 등급을 나누고, 위계질서를 만들고, 차별하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오늘 나의 혀는 누군가에게 칼이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