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 위 그림 일부가 된 듯 관람
- 조현화랑 내달 3일까지 선보여

하얀 전시장 벽과 바닥에 검은 ‘붓질’이 흐른다. 대나무 마디처럼 굽이치는 메마른 붓질에선 작가의 몸짓과 호흡, 리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시장 입구 바닥에서 시작해 안쪽 코너를 돌아 나오는 붓질은 힘차고 무거우면서도 달맞이고개 앞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테라스를 타고 들어와 불어나가는 듯 가볍고 활기차다.

조현화랑 달맞이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이배 작가의 ‘붓질’ 작품. 조현화랑 제공

숯과 수묵을 통해 한국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숯의 화가’ 이배의 개인전 ‘비스듬히’(oblique)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에서 열린다. 최근 수년 새 최고의 블루칩 작가로 주목받는 작가의 전시는 다음 달 3일까지 이어진다. 달맞이 전시장 1층에선 벽과 바닥에 종이를 붙인 뒤 이를 캔버스 삼아 ‘붓질’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그림의 무대인 종이에 오르면 작품의 일부가 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조현화랑이 리모델링 후 새롭게 선보이는 2층 전시장에선 검정 숯 조각을 조립하듯 짜맞춰 평면 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오일 파스텔을 활용해 흰 선을 그린 작품 ‘불로부터(Issu du feu white line)’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빛에 따라, 감상자의 방향에 따라 검정 초록 은색 등 다채로운 색을 발산하는 각각의 숯 조각은 마치 자개 작품은 보는 듯 흥미롭다.

‘숯은 나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바탕이 되고 나의 감성은 손을 빌려 선을 새긴다’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숯의 물질성과 흰 선의 드로잉의 만남은 흑과 백, 선과 여백의 관계성을 통해 음과 양, 존재와 부재 개념의 공존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바닷가와 맞닿은 전시장의 특성을 살려 공간 자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해석하고 부산 밤바다에 비가 내리는 풍경으로 연상하기도 한다.

전시 제목 ‘Oblique’는 ‘비스듬히’라는 의미와 함께 무언가를 ‘움직인다’는 뜻의 형용사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현대미술은 ‘만남의 과정’이며 작품이 작동하고 생동하면서 작가와 관객을 연결한다는 작가의 바람을 담았다. 전시는 조현화랑의 달맞이와 해운대 공간에서 동시 진행 중이다. 해운대 전시장에선 붓질 작품과 조각, 수채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