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나의 아저씨’ 역시 초반부까지 꽤 진입장벽이 높았다. 힘겹고 건조한 생활을 버텨내는 인물들에 대한 집요한 시선을 따라가기엔 숨이 차기도 했다. 허나 이것은 극적 재미를 넘어 커다란 공감과 위로를 되돌려 받기 위한 치밀한 빌드업일 것이다. 믿고 따라가면 결국 축복처럼 위안이 쏟아지겠지. 전작 ‘나의 아저씨’가 그랬듯이.

심지어 대진운도 좋지 않다. 같은 시간대 방영하는 드라마는 하필 ‘국민 작가’ 반열에 오른 지 오래인 노희경 작가에 이병헌 차승원 김우빈 한지민 신민아 등등 보기 힘든 탑 배우가 바글바글 모여 대충 봐도 사활을 걸었다는 느낌의 ‘우리들의 블루스’다. 그래서 ‘나의 해방일지’는 더욱더 응원하고 싶은 드라마다.

여전히 드라마는 일상적인 수다와 독백을 이어가지만, 방심하는 순간 뼈 때리고 심장 건드리는 날카롭고 묵직한 대사로 시간차 공격을 거듭한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시청이 아닌 체험하는 또 하나의 인생 드라마를 발견했다고 하면 섣부른 판단일까? 2화가 끝날 무렵 염미정(김지원)은 이름도 모르는 알콜홀릭 외지인 구 씨(손석구)에게 ‘나를 추앙해요’라고 뜬금없이 요구한다. 너무 급발진 아닌가? 하는 논란도 많지만, 그 순간 나는 이 작품을 추앙하기로 결심했다. 굳이 경기도민은 아니라도 어쩐지 주변부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에도 ‘관계’들이 힘에 부치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성향을 하나씩 품고 있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벌써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때마침 믿고 있던 가치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 뭐라도 추앙할 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전도하는 마음으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추천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해방에 커다란 응원이 될 지도 모른다. 현재로선 매우 그렇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