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남단 섬 가덕도의 해안로를 따라가다 바다 쪽으로 바라보면 천성항을 끼고 있는 천성마을이 보인다. 천성마을의 가운데에는 조선시대 왜란의 치열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닌 천성진성(부산시 지정기념물 제34호)이 자리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두정갑. 부산박물관 제공

천성진성은 가덕진성과 함께 조선시대 수군진성의 최전방기지였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직접 천성진에 주둔한 기록이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전해지고 있어 흥미롭다. 가덕도는 충무공 부대와 왜군 사이에 격전이 일어난 곳이다. 충무공은 전라도 바다부터 가덕도 일대를 종횡무진하며 왜군을 격파하였다. 1592년 8월께 도망치는 왜군을 쫓아 천성진에 들어가서 오래 머무를 것처럼 속이고 회군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천성의 지리적 이점을 눈 여겨 봐둔 충무공은 부산포해전 전날 밤 천성 앞바다에 머물렀다가 부산포로 진출해 대승을 이끌었다. 이렇듯 충무공은 천성진을 왜군 격파를 위한 교두보이자 최전선으로 삼았다.

부산박물관은 강서구와 함께 2016년부터 천성진성에 대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20년 11월부터 진행된 제4차 발굴조사에서 두정철갑찰(頭釘鐵甲札) 580여 점이 철제투구 및 철제화살촉과 함께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후기 갑옷인 두정갑은 외관상 옷의 겉감 밖으로 나와 있는 쇠못머리(두정·頭釘)만 보이나, 이 쇠못머리가 옷 속 미늘(갑찰·甲札)과 하나하나 연결된 전투복이다. 미늘은 가죽이나 종이로 만들기도 하지만 천성진성의 것은 모두 손바닥만한 철판으로 만들었다. 갑옷 한 벌에 미늘이 100여 점 부착된다고 하니, 출토된 미늘 수량으로 보아 천성진성의 갑옷은 최소 5벌은 되지 않았을까.

부산 강서구 천성진성에서 출토된 두정철갑찰. 부산박물관 제공

매장문화재조사는 유물이 출토될 때 토층이 쌓인 순서, 같이 출토된 유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쉽게도 천성진성에서 출토된 두정철갑찰은 성곽 폐기 후 마지막으로 두껍게 쌓인 매몰토 속에 중구난방으로 묻혀있어 시기를 판단할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천성진성 두정철갑찰을 두고 조선시대 갑옷 전문가들이 모여 3시간이 넘는 열정적인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17세기 또는 19세기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막막했던 조사단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었다. 또 발굴조사 현장에서 열린 학술자문회의에서 한 자문위원은 “1905년 황성신문에 ‘가덕진의 갑주 5건을 탈취하여 천성으로 가져와 갑옷은 천성진에 버리고, 필요한 것은 천성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였다’는 기사가 있다”며 결정적인 자문을 해주었다.

과연 천성진성 출토 두정갑의 미스테리는 어떻게 풀릴지 궁금하다. 앞으로 ‘천성진성 두정갑 연구 복원 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동래읍성 해자에서 출토된 찰갑과 천성진성 갑옷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재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