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애국가를 새로 만든다면 보사노바 장르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거제도를 다녀오는, 동생의 자동차 안에서였다. 녀석은 갑자기 당일치기 여행을 가자며 새벽부터 집 앞에 차를 끌고 나타났다. 날밤 꼬박 새운 나를 태우고 햇볕 쨍쨍한 날, 강과 바다 위로 뻗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스피커에선 주앙 질베르토의 보사노바가 흐르고 있었다. 최근 꽂힌 음악인가보다. 물론 사내들의 여행에 필요 이상 심하게 아름다운 음악 아니냐고 여러 차례 항의도 했지만, 뭔가에 꽂히면 깊숙이 꽂히는 친구라 부질없었다.

사람이 잘못이지 음악은 무슨 잘못인가라는 심경으로 실컷 보사노바를 감상했다.

그야말로 무해하기 짝이 없는 음악이다. 브라질 삼바리듬과 쿨재즈가 만나 탄생한 보사노바는 참으로 요망한 음악이다. 무해한 데다 요망하기까지 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기분 좋을 땐 더욱 들뜨게 고취해주고, 멍 때릴 땐 더 치열하게 멍 때릴 수 있으며, 슬프거나 우울할 땐 슬픔과 우울이 모조리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보사노바하게’ 슬프고 우울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어차피 인생은 보사노바이기 때문이지 싶다. 반박 시, 참고하겠다.

카페 운영자 중 음악 취향이 없거나 별로라고 스스로 탓하는 분이 플레이리스트에 보사노바를 채워놓으면 그 집은 음악이 별로라고 손가락질받을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 보사노바의 고향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실화를 바탕으로 브라질 청년들의 생생한 삶을 보여준다. 운 없으면 동네 어린이들이 장난삼아 난사하는 총에 맞을 수도 있는 황당하고 살벌한 세상이다.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어떻게 낭만 가득한 ‘the girl from ipanema’ 같은 보사노바 명곡이 탄생했을까? 어쩌면 위험한 세상일수록 무해하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감성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재 버티는 삶은 그리 아름답지 못할지라도 아름답고 무해한 인생을 살아내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부드러운 보사노바 선율에 담아내는 것 아닐까? 다소 생뚱맞지만, 태극기 게양대 앞에 선 군중이 미풍처럼 잔잔한 보사노바 리듬에 맞춰 은은하게 애국가 제창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꽤 근사하고 멋진 풍경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