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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38> 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1812~1870)

벼락부자 소년의 추락 … 이 소설은 독자를 마음부자로 이끄는 유산

  • 서부국 서평가·세상관찰자
  •  |   입력 : 2022-03-03 19:25:03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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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천외한 인물과 해학 가득
- 반전 거듭, 흥미진진한 전개
- 곳곳에 문학적 장치 찾는 재미

- 속물 신사에 복수하는 숙녀 등
- 영국 빅토리아시대 상류층 풍자
- 삶의 방법·행복 구하는 길 안내

오는 9일 대선 투표일은 보이지 않는 유권자 기대가 지지율이라는 수치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다. 국민은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당선인이 기대를 현실로 이루는 능력자이길 갈망한다. 코로나 시대에 지친 국민이 가진 기대는 유다를 수밖에 없다. 기대는 삶을 바꾸는 원동력, 그 형태는 차츰 다가온다.
의자에 앉아 조는 찰스 디킨스. 그가 창작해 낸 다양한 등장인물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 부랑자 고아 악당 같은 음지 인물이 유독 많았다. 로버트 윌리엄 부스 작.
영국 전성기였던 빅토리아시대, 헐벗은 시골 소년이 막대한 유산 상속으로 품은 기대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장편소설이 ‘위대한 유산’이다. 디킨스는 당대 유명 문인이자 사회 지도층 인사. 이런저런 기대가 컸고,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았나 보다. 1861년 완결된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에 그걸 녹였다. 기대하는 자는 뜻을 관철하려고 좌충우돌한다. 종착 지점에 이르면 최종 성적표를 받아든다. 이루었는가?

이 고전은 치밀한 줄거리, 기상천외한 등장인물, 반전을 거듭하는 박진감 넘치는 서사, 익살스러운 필체를 갖췄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한 디킨스 대표작. 중년 주인공이 회고하는 형식이니,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Expectation, ‘기대’는 ‘유산’으로 싹을 틔웠다. ‘로또 보이’ 이름은 핍. 갑자기 부자가 되면 어떻게 삶이 변할까. 디킨스는 독이 스민다고 본 듯하다.

■ 기괴한 인물, 강력한 이야기

핍은 런던에서 40여㎞ 떨어진 늪지대 시골에 산다. 소년은 신사로 성공해 근사한 숙녀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꾼다. 현실은 메탄 냄새 풍기는 늪. 핍이 신사가 된다는 건 개천에서 용 나는 꼴이다. 대장장이와 결혼한 20살 많은 누나에게 모진 구박을 받으며, 집구석 식탁에서 알파벳이나 겨우 깨우쳐야 하는 촌뜨기이니까.

어느 날 소년은 벼락부자가 돼 흥분에 휩싸인다. 신분을 숨긴 재력가가 막대한 유산을 넘겼다. 도대체 누가? 소설 중반이 넘어야 그 정체가 드러난다. 그때까지 디킨스는 시치미 떼고 독자가 엉뚱한 사람을 숨은 재력가로 여기도록 만든다. 유산을 받게 된 이유도 나중에 드러난다. 하지만 핍을 찾아온 행운은 만만찮은 대가를 요구한다.

디킨스 소설 속 등장인물 면면을 읽는 재미가 각별한데 이 작품도 그렇다. 남남 같은 등장인물들이 알고 보니 하나같이 질긴 인연으로 연결된 사이다. 비밀스러운 관계가 하나둘 드러난다. 소설에서 흉터는 어두운 과거를 상징한다. 핍 유산을 관리하는 변호사 재거스를 시중드는 하녀 몰리는 손목에 난 흉터를 감추고 산다. 저자는 그 흉터를 독자에게 무심한 듯 보여주지만 다 계획이 있었다. 이런 문학적 장치를 찾는 재미가 크다.

저자가 창조한 등장인물은 한 번 접하면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덕분에 디킨스 소설은 인기를 끈다. 연극 영화 같은 다른 장르로 각색돼 남녀노소를 만난다. 자기밖에 모르는 자신을 회개하는 스크루지 영감(‘크리스마스 캐럴’), 자수성가 전형을 보여주는 올리버 트위스트(‘올리버 트위스트’), 천사같이 착한 소녀 ‘넬’(‘오래된 골동품 상점’)…. 이 고전에도 기괴한 인물이 등장한다. 결혼에 실패한 ‘미스 해비샴’이다. 그녀는 인간 박쥐다. 거실 시곗바늘을 파혼이 확인된 오전 8시40분에 멈춰 놓고, 그때 입은 웨딩드레스를 벗지 않고 늙어간다.

나타나지 않은 신랑을 증오하면서 세상 모든 남자에 복수할 꿈을 꾼다. 저택은 황량하고, 불 밝히지 못한 웨딩케이크는 벌레투성이. 빼빼 마르고 백발이 된 그녀는 남자에 복수해줄 여전사를 키운다. 미모를 무기로 내세운 양녀 에스텔라다. 이 숙녀는 자유를 희생한 대가로 해비샴 유산을 상속한다. 숱한 남자가 해비샴과 에스텔라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든다. 핍 역시 에스텔라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얼음 공주처럼 싸늘하다.

■ 이 유산은 왜 위대한가

필라델피아 디킨스 동상. 아래 소녀는 디킨스 ‘골동품 가게’에 나오는 주인공 리틀 넬 트렌트.
웃음은 디킨스 소설을 찾게 만드는 매력 요소.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데,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일찍 부모를 여읜 핍을 누나인 조 부인이 키우는데 그녀는 무척 거칠다. 걸핏하면 타르가 든 만병통치약을 핍에게 강제로 먹였다. 디킨스는 이 소년이 ‘막 칠을 끝낸 울타리에서 나는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고 썼다. 조 부인은 구토를 부르는 엉터리 물약을 핍 머리통을 팔로 끼고 억지로 먹인다. 자형 조 가저리도 같이 복용하는 봉변을 당한다. 빅토리아시대 웃음 코드. 하나 더 보자. 런던에 온 핍은 허버트 포켓에게 신사 교육을 받는다. 이곳에는 또 다른 학생 벤틀리 드러믈이 ‘돌머리에 기름을 치는’ 중이다. 그는 스승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덩치였지만 ‘대부분 신사의 머리 여섯 개에 해당하는 지능이 모자랐다’고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이 고전은 뒤로 갈수록 웃음기는 사라지고 진지해진다. 살인 추리소설처럼 긴장감이 흐른다.

후반부에 가서 풀리는 비밀. 핍이 우연히 마주친 탈옥 죄수를 측은지심에서 도와준 일이 유산 상속으로 이어졌다! 마을 공동묘지에서 소년은 험상궂은 탈옥 죄수 프로비스와 맞닥뜨린다. 그는 음식, 족쇄를 절단할 줄톱을 가져오라고 핍을 을렀다. 순진한 소년은 공포에 떨며 시키는 대로 음식을 가져다주고 그걸 짐승처럼 먹는 그를 보며 동정심을 느낀다. 이때 프로비스는 마음속으로 결초보은을 되뇐다. ‘위대한 유산’이란 표현은 18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런던 변호사 재거스가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되었다고 밝히는 대목에서다.

이 소설은 목차에 소제목이 달리지 않아 본문을 읽어내야 내용이 파악된다. 줄거리는 크게 세 단계. 첫 번째(1~19장)는 유산 상속자 핍이 신사 수업을 받기 위해 시골 고향에서 런던으로 떠나는 장면까지다. 두 번째(20~39장) 얘기에선 유산을 물려준 이가 정체를 드러낸다. 대반전이다. 미스 해비샴이 아니었다. ‘위대한 유산’은 주간지에 연재됐는데 당시 이 대목을 접한 독자가 꽤 놀랐겠다.

핍은 교만한 인성을 드러낸다. 속물 졸부 같다. 사치·허영에 빠지고, ‘늪지대 핍 시절’을 숨기고 싶다. 자기 과거를 아는 지인을 피하는 이유. 돈독이 스며 정신이 마비됐는가. 결국 유산을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다. 남은 유산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위대한 유산’이 완결된 1861년 전후 저자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흔 중반 디킨슨은 17세 여배우와 사귀며 아내 캐서린과 떨어져 사는 가정불화를 겪었다. 수입이 적지 않았지만, 씀씀이가 헤퍼 대가족(자녀만 10명)을 부양하기 힘겨웠다. 이렇게 노년 삶이 고달팠으니 그 여파가 창작에 미쳤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정상에 서 본 저자에게는 더욱더 쓴맛을 준 듯하다. 행운과 불운이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 같은 삶, 회의감이 작품에 배었으니 말이다.

‘위대한 유산’은 해피엔딩을 예상케 하며 끝을 맺지만, 삶이 가진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비애가 그대로 전해진다. 상류사회 신사였지만 순정하게 살지 못한 디킨스, 핍과 닮았다. 소설 속 펌블추크나 콤피슨 같은 악당에 미운털을 박은 게 눈에 보인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속물 신사·숙녀가 넘쳐나는 당대 상류층을 고발하는 사회소설로도 읽힌다.

주인공 유산이 사라진 건 아니다. 독자에게 넘어왔다. 어떤 유산인가 하면, 세상을 견뎌내는 힘이 그중 하나다. 사람 좋은 핍 친구 허버트를 보라. 그는 가난과 패배를 참을 줄 안다. ‘코피’ 터지더라도 쓱 손등으로 닦아내곤 다시 일어서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행복을 구하는 길은 다양하다. 이 책은 그걸 유산으로 남긴다. 디킨스에겐 독자가 영원한 상속인. 허버트처럼 그런 재산을 가진 인물을 이 책 속에 여럿 숨겨 놓았다. 그들을 찾아내 마음 부자 되는 계약을 맺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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