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화드로잉 신작 100여 점 선봬

두껍게 발린 미색의 유화 위에 연필 드로잉이 단순하지만 소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에서 가족의 모습, 거리의 나무와 꽃, 동네 풍경 등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일상 속 마주하는 아름다움이 주요 소재다. 작은 캔버스에 빈틈 없이 닿은 연필의 궤적과 그것이 만든 독특한 질감을 따라 읽히는 작가의 호흡은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았다.

문성식 작가가 다음 달 28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Life 삶’ 전시를 갖는다. 국제갤러리 제공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이 새해 첫 전시로 문성식(43) 작가의 개인전 ‘Life 삶’을 다음 달 28일까지 연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해 ‘미술계 아이돌’로 불렸던 작가는 “베니스에 다녀오고 한동안 경직된 상태가 있었다. 이제 특별한 각오를 하지 않고 평범한 나를, 평범한 마음으로 그리려 한다. 실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문성식 드로잉’이라는 답에 가까워진 느낌이다”고 소개했다.

작가의 ‘정원과 가족’.

전시는 삶이라는 방대한 주제 안에서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의 소소한 기록을 제시한다. 경북 김천 고향의 풍경이나 현재 살고 있는 해운대 달맞이고개에서 마주하는 일상들이 담겼다. 100여 점의 드로잉 신작 중심으로 장미 연작 ‘그냥 삶’과 지난해 전남 수묵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그런 그런 풍경:땅의 모습’ 연작 중 10여 점도 포함됐다.

일상의 파편을 담은 ‘Life 삶’ 전시의 대다수 작품에는 연필이 주 재료로 사용됐다. 대학 시절부터 연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작가는 이 재료를 단순한 도구로 쓰기보다는 그 특성을 고유한 회화 언어의 일부로 발전시켰다. “연필은 회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입니다. 즉흥적이며 소박합니다. 과장 없고 꾸밈이 없는 저의 성격과 닮은 것 같아요. 그림은 작가의 습성과 닮아 있는데, 연필의 매력은 의식의 명령을 손이라는 매개체를 거쳐 왜곡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죠.”

이번 신작 역시 대부분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그 바탕을 긁어내 그림을 그리는 ‘유화 드로잉’으로 구성했다. 연필과 유화는 그 물성이 쉽게 섞이지 않아 표면의 저항을 만들기 마련인데, 이때 힘을 주어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의지를 반복적으로 투여하는 수행을 하게 된다. 임파스토(물감을 두텁게 칠해 최대한의 질감과 입체적 효과를 나타내는 기법)를 닮은 이 방식으로 연필과 유화 사이의 저항을 이겨내고 ‘그리려고 하는 의지’ 즉 ‘삶’을 고착하고 있다.

여전히 ‘선의 됨됨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작가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작업이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 4년 전 별다른 연고 없이 작업실을 차린 부산에서 정착을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여러 압력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하늘과 바다가 많이 보이고, 삶이 단조로워지면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거죠. 부산엔 아내와 놀러왔을 때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아내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내려오게 됐습니다. 2년만 살아보자고 왔는데 벌써 4년이 됐어요. 요즘은 계속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