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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진의 무비셰프 <29>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

  • 정익진 시인
  •  |   입력 : 2022-01-23 13: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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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진의 무비세프 <29> 주윤발 (周潤發, 저우룬파)



홍콩 누아르 최고작, ‘영웅본색’의 주인공



배우 주윤발.


브래드 피트를 피트 형으로 부르듯 주윤발도 윤발이 형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는 않다. 싸나이 의리에 목숨을 건 남자 중의 남자, 주윤발의 ‘영웅본색’(1986). 나는 이 영화를 어디서 보았을까.

장소는 어느 정도 기억난다. 지금은 없어진, 광복동의 영화관이었다. 영화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서 봤다. 연일 만원이라 앉아서 볼 수 없었다. 원래 영화관 좌석은 지정석이지만, 이 당시에는 지정석이고 뭐고 없었다. 자리가 없으면 무조건 서서 봐야 했다. 그만큼 이 영화, ‘영웅본색’은 한국에서 흥행작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홍콩 누아르 장르 영화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주인공 적룡(추롱)을 제외한 주윤발이나 장국영 같은 홍콩 배우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 같은 홍콩영화를 보기 이전, 즉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주로 중화권 영화배우 왕우가 주연한 ‘칼쌈(무협영화)’ 영화들이었다. 왕우 주연의 ‘외팔이’ 시리즈가 아주 유명했다. 왕우라는 영화배우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왕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왕우가 주연을 한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나의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도 영화감상을 매우 좋아하신다.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어머니 보시기에 적당한 영화를 골라 함께 볼 정도이다. 필자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어머니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어린 시절에는 쫄래쫄래 엄마 손 잡고 영화관엘 따라다녔지만,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엄마에게서 독립해 주로 혼자 영화 보러 다녔다. 가끔은 영화를 보기 위해 대구로, 마산으로 원정길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낯선 장소에 대한 폭발적인 호기심 때문에 다른 도시를 전전하기도 했다.

처음 가보는 타 도시의 영화관에서 완전히 낯선 사람에 둘러싸여 혼자서 영화를 보는 소년, 그것이 그 당시 나의 초상이었다. 따지고 보니 어린 시절에도 영화를 보기 위해 항상 엄마와 함께 간 것은 아니다. 혼자 간 적도 많다. 잠시 옆길로 샜다. 외팔이 시리즈의 주연 왕우를 이야기하다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생각난 김에 필자가 영화를 주제로 쓴 시편 ‘청춘’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양해 바란다.



내가 추억을 떠올리는 가장 익숙한 방식은

빵집의, 벽시계의, 초등학교의, 강아지의 이름이

아니라 배우들의 이름이다

즈느비에브 뷔졸드

그녀였다

서점에서 최신 영화 잡지…… M을 뒤적이다

40년가량 잊고 있었던 그녀를 0.01초 만에 알아보았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직 살아 있어 고맙다, 라고 말할 뻔했다

<천일의 앤>에서 앤 불린을 연기했던 그녀……

머리와…… 얼굴이 유난히 작고 예뻐서 영원히 늙지 않을 거 같았는데

소녀와 같은 할머니가 되었다, 즈느비에브 뷔졸드(42년생)

샤를로트 갱스부르(71년생)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이다

美는 기억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사르트르도 한때 프랑스였겠지만

줄리 크리스티(라라, 41년생)도 엄청 늙었고

장 루이 트래티냥도 엄청 할아버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32년생), 데버러 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리 마빈, 막시밀리안 셸도 죽었고

말론 브란도(24년생)도 죽었다

그네들과 비슷한 연배인 27년생이신 나의 아버지

정종옥 씨께서는 잉그리드 버그먼을 좋아했고

33년생이신 나의 어머니 배소란 여사는

대머리에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의 배우,

율 브리너를 무척 좋아하셨다

이빨 빠지고 허리도 아프시지만

두 분 다 밥 잘 드시고, 잘 계신다



-청춘/정익진-



배우 주윤발. 영화 ‘영웅본색’. 1980년대 배우 주윤발에 빠져든 팬이라면 이 장면은 ‘전설’일 것이다.


‘영웅본색’(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년)은 오우삼 감독의 홍콩 영화다. 암흑가를 다룸으로써 홍콩 누아르 영화 시대 서막을 열어준 ‘총쌈’ 영화다. 액션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홍콩 누아르 장르 역대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주윤발의 대표작이다. 이 당시 평론가들은 기존 어메리칸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홍콩 느와르’라는 또 다른 색채를 만들었다는 평을 했다.



필름 누아르에 대해 잠시 살펴본다. 누아르(Noir). 프랑스어로 검다(black)는 뜻. 검은 모자, 검은 안경, 무표정하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 등등이 떠오른다. 공식적으로 누아르라는 장르의 명확한 정의는 없다. 누아르는 독립된 장르라기보다는 느낌이나 분위기로 파악되기에 100프로 누아르이기만 한 영화는 없다. 범죄 누아르, 갱스터 누아르, SF 누아르 또는 사이버 누아르, 테크 누아르 등이다.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은 모두 누아르라 한다.

 누아르에 나타난 남성상은 다음과 같다. 주로 사설 탐정(험프리 보가트로 대표되는)이나 수사관, ‘바보같지 않은’, 무목적성, 허무주의, 염세주의, 프롤레타리아, 터프가이 반영웅, 이성보다 본능, 생존을 위한 폭력(빅토리아 시대 탐정들처럼). 팜므파탈의 덫에 걸린 주인공. 주인공은 도덕적 갈등이나 약점 때문에 적의 손에 희생당하거나 패배함. 결말이 불행이다. 여성은 경제적, 사회적, 성적으로 독립된 여성상(전쟁에 따른 여성역할의 변화). 남성들이 가지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 불안함이 팜므파탈로 표현됨.



홍콩 누아르 장르 자체는 사실 역사가 제법 오래되었다. 1986년작인 ‘영웅본색’도 이미 60년대 영화를 재창조 수준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며 50~6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홍콩영화계의 장르 중 하나로 홍콩에선 무협영화와 같이 단골 장르이다.

소식에 따르면 ‘영웅본색’ 1편은 서울 3대 개봉관에서 10만도 안되는 흥행 참패를 기록하였고 왕조현 주연의 ‘천녀유혼’ 역시 12월에 B급 개봉관인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하여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개봉관에서 영화가 끝나면 재개봉관. 3번관 .4번관 등 변두리 극장에서 계속 상영하는 시스템이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은 이런 재개봉관에서 10대 질풍노도 세대의 폭발적인 지지율 상승으로 유명세를 이어갔다.

뜬금없이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주윤발이라는 배우가 책받침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더니 성냥개비 입에 물기. 선글라스 쓴 채로 지폐로 담뱃불 붙이기 등등 주윤발의 일거수 일투족이 한국 모든 연예계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인기에 힘입어 주윤발과 왕조현이 동시에 국내 음료 CF에 등장해 경쟁하기도 했다.



주윤발이” 싸랑해요 밀키스., 왕조현은 “반했어요 크리미.“ (중국인의 한국어 발음)



주제곡도 좋았다. 뜻을 알 수 없는 중국어로 부르는 노래가 영화 주요 장면들과 함께 흘러나올 때, 정말 가슴이 뭉클하다. 당장이라도 총을 빼 들고 적진으로 달려가 나쁜 놈들을 모조리 하나하나 쓰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노래이다.

가수는 이 영화에 출연한 故 장국영이다. 작곡가는 고가휘, 당연정(當年情)이란 제목의 뜻은 ‘그때의 감정’이다. 노래에 ‘흥’이라든지 ‘쎵’ 같은 발음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온통 이응으로만 들렸다. 가사 내용은 아주 쉽다.



가벼운 웃음소리, 따스함으로 날 감싸고

너는 내게,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지

가벼운 위로의 말, (난) 길고 긴 길을지나

결국, 맑고 아름다운 길에 들어섰네

환호성을 외치며 뛰어오던 (너), 아침 해가 금빛 화살을 쏘는 듯 하고

내가 너와 만나며, 지난날의 미소를 되찾네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 고개 들고 함께 하늘을 보니

모처럼, 푸른 하늘은 너를 축복하듯 아름답구나

너를 안으니, 그때의 따스함이 다시 느껴지고,

마음속의, 어린 시절 희망찬 꿈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듯 한데

오늘의 나, 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때의 정, 이제 더 새로워지는데

너를 보니, (네) 눈 속도 이미 따스함으로 가득차고

마음속, 지난날의 꿈은 아직 변하지 않은 듯한데

오늘의 나, 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때의 정, 더욱더 새로워지는데



이후 주윤발이 나온 영화를 보긴 보았다. 하지만 재미없는 만화책을 이리 펼쳐보고 저리 펼쳐보며 맥락을 못 잡 듯, 산만한 태도로 감상했다. 왜 집중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장예모나 첸 가이커 같은 중국 5세대 감독의 영화로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가 ‘와호장룡’을 만났고 ‘황후화’ ‘캐러비언 해적’에 출연한 주윤발을 보게 되었다. 이들 영화에서 홍콩 누아르에서 벗어난 주윤발을 만나 매우 신선했고 아주 흥미로웠다. 윤발이 형은 물이 오른 카리스마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했다.





‘와호장룡’(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은 2000년 개봉한 무협영화로, 영화 제목은 춘추전국시대 시인 유신(庾信)의 시 구절 ‘어둠 속의 바위 뒤에는 호랑이가 숨어 있을 것 같고, 바위 밑의 거대한 나무 뿌리는 용과 같다’에서 나온 말이라 전한다. 원작은 중국의 작가 왕도려(王度廬)가 중일전쟁으로 산둥성 청도(칭다오)로 피란왔을 때 ‘청도대신민보’라는 신문에 연재한 동명 소설이다.

2006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영화감독인 이안(李安Ang Lee, 1945년 생)이 연출하고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주연에 중국 홍콩 미국 대만이 합작했다. 청나라 건륭제 시기 명검으로 이름난 청명검(靑冥劍)을 둘러싸고 이들 인물간 음모와 갈등, 배신을 다룬다.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북미권에서 왕대박을 쳐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화다.



특히 한 팔로 칼을 휘두르는 주윤발의 모습이 정말로 멋쪘다. ‘한 팔 검법’은 그냥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작중 무림 최고 고수 이모백 역을 맡은 주윤발은 ‘총쌈’은 잘해도 ‘칼쌈’을 직접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검술 동작이 어설펐기에 ‘칼쌈’ 장면에서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 검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근데 이것이 되려 배우의 연기력과 조합되어 당대 최고 검술 달인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연출과 연기력이 빚어낸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한다.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 1955년 생)은 홍콩을 상징하는 배우이자 가수, 영원한 ‘따거(엄청난 인간성 때문에)’로 불린다.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총쌈’ 영화 전성기를 가져온 아이콘이다. 영국령 홍콩 라마 섬에서 태어났으며,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카이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65년(10세)까지 홍콩 라마 섬 도서촌에서 자랐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가 너무 어려워 중학교 중퇴했다. 상점 직원, 우편배달부, 구두닦이, 사무 보조, 호텔 웨이터, 카메라 세일즈맨 및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하니 참으로 불우하고 암담한 소년 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는 멋지게 나이들어간다. 이토록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사람, 성숙해지는 사람, 아름다워지는 사암은 지극히 드물다.


추신:

주윤발은 영화 홍보차 대만에 가 팬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돈으로 8100억에 달한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주윤발의 통 큰 기부였다. 그는 2010년부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기회를 통해 의사를 확실히 전한 것이다. 윤발이 형은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잠깐 맡아둔 거다.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돈을 영원히 가질 수는 없지 않나.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나면 여전히 다른 누군가가 쓰게 남길 수 밖에 없다. 지금 은행에 넣어둔다고 해도 죽고 나면 그 돈을 가져갈 수 없다. 의미 있는 기구, 그 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모습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읽었다. 순수함과 선함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뭉클하지 않은가.시인 ij07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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