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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36> 작사가 ‘월견초(月見草)’를 키운 부산

천재성 번쩍인 괴짜, 그가 노랫말 붙여 히트시킨 곡만 200여 개

  • 이동순 시인
  •  |   입력 : 2021-11-07 19:46:3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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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서 태어나 1954년 작사가 데뷔
- 빅토리레코드 작곡가 백영호와 합심
- ‘원통해서 못 살겠네’ 등 유행곡 남겨
- 다양한 테마로 3000여 곡 작사 참여
- 대폿집 돌며 선배들 즐겁게 해주기도

한 곡의 가요작품에는 온갖 요소가 그 속에 무르녹아 있다. 기본적으로는 작사, 작곡, 가창의 세 조건일 터이나 그 요소들에도 각각 함유되어 있는 중요한 특별성이 있을 것이다. 그 하나하나는 제각기 소중한 의미로 작용하는 기능이 되어서 반짝이는 사금파리로 노래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리라. 작사 부문만 해도 그렇다. 대중은 노래를 부르며 곡조를 즐기지만 머릿속으로는 가사의 분위기와 의미를 헤아리고 음미한다. 그런 점에서 가사가 발산하는 울림이나 효과는 매우 크고 막중하다. 아무리 곡조가 좋아도 가사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 그 노래는 거의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완성도가 뛰어난 노래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작사, 작곡, 가창 세 요소가 결 고르게 서로 어울리며 자연스러운 배합을 빚어내는 것이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시너지효과가 한 곡의 가요작품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대중음악사에는 출중한 재능을 발휘한 작사가들이 많았다. 식민지시절에는 조명암 박영호 강사랑 이부풍 고려성 선생을 그 첫 번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요, 해방 이후로는 반야월 유호 손로원 천봉 한산도 정두수 등을 꼽을 수 있으리라.
작사가 월견초 선생의 생전 모습.
■부산에 터 잡은 천재 작사가

이 빛나는 이름들의 끝에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천재적 작사가를 보태고자 한다. 누구냐 하면 밀양출생의 작사가 월견초(月見草·본명 서정권·1936~197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데뷔는 1954년 부산 리버티레코드해서 했지만 그가 유명작사가로 발돋움하게 된 곳은 빅토리레코드사였다. 그만큼 월견초의 초창기 활동터전은 바로 항도 부산이었다. 백영호가 주도하던 빅토리레코드사에서 강사랑 야인초 손로원 천봉 이우용 박금호 한산도 등과 같이 노래가사를 전담하면서 자신의 토대를 구축해 나갔다. 월견초가 쓴 가사로 빅토리레코드에서 발표한 최대의 히트곡으로는 ‘원통해서 못 살겠네’(월견초 작사·백영호 작곡·정향 노래)와 ‘달나라 별나라’(월견초 작사·백영호 작곡·황금심 노래)이다.

당시 월견초가 쓴 노랫말의 작곡 전담은 작곡계의 귀재 백영호였다. 1950년대 부산에서 광채를 빛내던 빅토리레코드는 말하자면 백영호 사단이 이룩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당시 빅토리의 가수진으로는 현인 박재홍 신해성 한종명 도미 정향 유상문 장락진 등의 남성가수들과 백설희 금사향 박애경 등의 여성가수로 화려한 구성이었다. 원로가수인 남인수, 고운봉, 황금심 등도 빅토리에서 음반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빅토리레코드사는 월견초가 작사가로 성장한 초창기 활동무대였고, 작곡가 백영호가 그 성장을 크게 뒷받침해주었다. 작사가 월견초의 작품은 도합 3000곡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히트곡만 200여곡이다. 1950년대의 대표곡으로는 ‘청춘무정’(남인수), ‘인생의 귀향지’(남인수), ‘원통해서 못 살겠네’(정향), ‘오백년 고려성’(방태원), ‘갈매기 사랑’(손인호), ‘떠나가는 밤 열차’(손인호), ‘항구의 일야’(황금심) 등이 있다. 1960년대는 월견초의 최대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이정표’(남일해), ‘밤차에 만난 사람’(위키리), ‘청춘을 돌려다오’(신행일), ‘살아있는 가로수’(이미자), ‘들국화’(이미자), ‘고모령을 넘을 때’(이미자), ‘버림받은 여자’(조미미), ‘둘 없는 사랑’(나훈아) 등의 빅 히트곡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저력은 1970년대로도 계속 이어져서 ‘울릉도사랑’(김세레나), ‘경상도 청년’(김상희), ‘삼일로’(여운), ‘산딸기’(나훈아), ‘두 어머니의 비밀’(나훈아), ‘첫길’(배호), ‘황토길’(이미자), ‘너 하나만을’(이상열) 등을 발표하면서 가요팬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과 위안을 주었다.

그밖에도 ‘이국의 낙타’(원방현), ‘주막 없는 박달재’(박재홍), ‘사나이 우는 마음’(최무룡), ‘인생의 교차로’(후랑크백), ‘한탄강 사연’(장세정), ‘왜 왔던가’(백설희), ‘죄 많은 인생’(남백송), ‘해당화 사랑’(송민도), ‘금자동 은자동’(도성아), ‘추억’(도미), ‘낙방과객’(박재홍), ‘한 많은 양산도’(고대원) 등이 모두 월견초 작사의 노랫말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민의 애환, 사랑과 이별 등 담긴 가사

그가 만든 작사를 모은 책 ‘청춘을 돌려다오’.
각각의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월견초 노랫말이 지닌 특징은 고향, 서민의 삶과 애환, 가족애, 사랑과 이별의 아픔 등으로 나타나는데 작품 속에는 이런 정서들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있다. 한국가요사 초창기의 원로작사가였던 반야월 선생의 회고록 ‘불효자는 웁니다’에는 후배 작사가 월견초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서울 종로구의 수도극장(스카라극장) 주변에는 레코드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했고, 가수와 배우들이 포진했으며 그들이 주로 집결하는 다방과 술집이 많았다. 이 도로는 여름에 폭우가 쏟아질 때 남산의 물이 마치 하천처럼 흘러내려 청계천으로 유입되었다. 그래서 대중음악인들은 이 거리를 ‘스카라계곡’이라 불렀다. 해만 저물면 아리랑집, 두꺼비집, 초막집, 울산집, 경상도집, 청주할머니집, 고모네집, 향원집, 고령집 등 대폿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런 술자리에 반드시 필수양념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멤버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작사가 월견초였다. 미리 행방을 알리지 않고 어느 술집에 가더라도 어떻게 알고 찾아와 문을 콰당탕 열면서 들어왔다.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 “지가 쫌 늦었지예? 죄송합니더.” 그리곤 털썩 주저앉아 빈 술잔을 내밀며 어서 술을 달라고 재촉했다. 선배들이 놀린답시고 “아니, 누가 자네더러 이 자리에 오라고 했나?”라고 하면 “지는 진작부터 선생님들 전속 아입니꺼. 마마 술이나 어서 돌리시이소.”라고 응답해서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 월견초가 막걸리를 한잔 쭈욱 들이켜고 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일어나 “자, 노래 한 곡조 불러야지예. 지가 남인수 선생의 ‘무정열차’를 한곡 하겠십니더”라면서 혼자 목청을 뽑았다고 한다. 가요계 선배들을 언제나 깍듯이 모시고 예의를 갖추며 “선생님, 대포 한잔 쪼매만 하입시더” “오늘 몇 푼 생깃십니더”라고 하면서 재촉하던 그립고 아름다운 후배로 기억한다.

반야월 선생이 월견초를 처음 만난 것은 1957년 부산극장에서 열린 고복수 선생의 은퇴공연무대였다. 월견초는 그날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반야월을 찾아와 첫 인사를 드렸다. “지는예, 부산에 사는 작사가 지망생 월견초라고 합니더. 선생님을 너무 존경합니더. 예명도 선생님의 반야월에서 ‘월(月)’짜를 따서 제 예명의 첫 글자로 넣었심니더. 지도 서울 가서 일해보고 싶습니더.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이소.” 반야월 선생은 월견초에 대한 이런 추억을 회고하고 있다. 작사가 정두수 선생의 회고록 “노래 따라 삼천리”에도 월견초 이야기가 등장한다. 정두수는 월견초를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는 사내, 천재성이 번쩍이는 익살스러운 괴짜!’ ‘언제나 빈털터리 주머니에 한 푼의 돈만 생겨도 술잔에 돈을 쓸어 넣는, 술에 절어 사는 김삿갓이 아닌 월삿갓’으로 표현한다.

밀양 출생으로 부산에서 성장했고, 서울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작사가 월견초를 추억한다.

시인·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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