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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32> 부산가요사 터전 닦은 작곡가 강남주

가수활동 2년간 ‘식민의 恨’ 위로 … 해방 후 부산서 작곡 전념

  • 이동순 시인
  •  |   입력 : 2021-08-29 19:09:5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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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씨개명·강제징용·만주이주 등
- 일제 민족말살정책 극에 달할 때
- ‘울고 싶은 마음’ 앨범으로 데뷔
- 떠돌이 신세 비애 절절함 노래

- 50년대 부산 자성대서 학원차려
- 음반 기획하고 제자 양성 집중
- 부산가요사 초창기 주춧돌 다져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여러 인연으로 부산에서 자리를 잡고 뜨거운 삶을 살아간 대중음악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초창기 인사들로는 야인초, 강남주, 한복남, 백영호, 한산도, 월견초 등을 먼저 들 수 있겠지요. 이분들은 가수가 아니라 작사가, 작곡가, 혹은 레코드회사의 설립운영자였지요. 오늘은 먼저 강남주(姜南舟, 1914~1976) 선생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식민지시대에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부산으로 내려와 음악학원을 열고 작곡활동에 전념했던 분입니다. 그를 가수로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1939년 5월 콜럼비아레코드 전속으로 활동했던 가수입니다. 데뷔곡 ‘울고 싶은 마음’은 험한 세월에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헤매던 식민지백성들의 비통한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강남주는 가요사 초창기 대중문화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던 가수였습니다.
일제 말 강제징용의 상징 군함도의 모습.
■일제 말 극악해진 시대 상황

흘러가는 물결과 떠도는 구름/ 동서남북 내 홀로 헤매이건만/

언제나 울고 싶은 나그네 심사/ 아 떠나온 고향 잊을 수 없네(‘울고 싶은 마음’ 1절)

이 노래가 발표된 1939년의 시대적 정황은 참담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모든 물자와 인력을 수탈해가기 위한 구체적 단계로 일제가 기획했던 ‘조선징발령’ 세칙이 그해 1월14일에 공포 시행되었습니다. 2월 초에는 대표적 수탈기관의 하나인 선만척식회사(鮮滿拓植會社) 주관으로 충남 일대에서 약 3000명가량의 농민들을 이민이란 명목으로 뽑아서 만주국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일제가 소련을 꼬드겨 연해주지역의 우리 동포 1만 명을 중앙아시아의 키질쿰사막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도 이 무렵입니다. 9월말에는 ‘국민징용령’이란 것을 만들어 이후 6년 동안 45만 명의 한국인을 동원이란 이름으로 끌고 가서 죽음터로 몰아넣었습니다. 가장 악랄한 정책은 1939년 11월10일에 법령을 공포해서 이듬해 2월에 시행한 ‘창씨개명’입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성씨와 이름을 아예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무서운 민족말살정책이었습니다.

점점 숨통을 옥죄어드는 제국주의통치에 염증을 느끼고 망명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속하기 위해서 그해 3월말에는 ‘국경취체법’이란 악법도 공포 시행되었습니다. 7월에는 전국에서 농민들을 강제 징발하여 ‘근로보국대’란 이름으로 만주에 보냈지요. 이 무렵 만주일대로 떠나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은 무려 1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뒤숭숭한 난세에 식민지 백성들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속에서 살던 집을 떠나 타관객지를 떠도는 정처 없는 유랑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삶의 위기를 헤쳐 나갈 그 어떤 뚜렷한 방책도 찾아낼 길 없고 다만 그들의 심정은 이 노래 제목과 같이 그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이 노래 1절은 그러한 전후 사정을 그림처럼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의 다른 노래들, 이를테면 ‘애수의 여로’ ‘애수의 사막’ ‘고달픈 여로’ ‘항구의 물망초’ ‘님 없는 신세’ ‘청춘회상’ ‘가등의 꿈’ 등도 떠돌이신세의 비애와 서러움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요사 터전 일군 강남주

강남주의 작곡집 앨범 ‘울고 싶은 마음’.
이 노래는 해방 후 강남주가 가수활동을 접은 다음 후배가수 최갑석이 다시 불러 음반을 내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1939년 5월 28일 자 기사에는 “신인 강남주군 입사 제1탄 ‘울고 싶은 마음’(부평초 시, 이용준 곡)”에 대한 소식이 실려 있고 이후 기사에서도 이 노래를 콜럼비아레코드 걸작반(傑作盤)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제 말 그의 전체 활동 시기는 1939년 5월부터 1941년 6월까지 2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데뷔곡 ‘울고 싶은 마음’을 비롯해서 마지막 곡 ‘항구의 물망초’에 이르기까지 도합 13편을 발표했습니다.

가수 강남주가 1941년 두 해만에 가수활동을 접은 까닭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짐작컨대 험한 세월에 활동기회를 더 이상 얻지 못하고 항도 부산으로 내려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남주는 1914년 황해도 봉산 출생입니다. 1955년 부산에서 ‘여인 탑’이란 노래의 취입음반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후 더 이상 가수활동은 하지 않았고, 작곡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1950년대 후반, 부산진 성곽이 보이는 자성대 언저리에 강남주 음악학원을 열고 작사 작곡을 겸하며 ‘강남주작곡집’ ‘강남주작편곡집’ 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역시 황해도 박연 출생으로 부산에 살고 있던 동향의 작사가 야인초(野人草, 본명 김봉철)와 친밀하게 어울리며 음반활동을 기획하고 제자들도 양성했던바 가수 진송남, 시민철, 작곡가 남국인 등은 이때 배출된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승 강남주의 노래를 불렀고, 음반작업에는 백야성도 함께했습니다.

‘강남주작편곡집’은 LP음반으로 발매가 되었는데 도토리자매 가요특집으로 기획되었고 오메가음반공사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이 음반에는 ‘애사(哀詞)의 노래’ ‘여인심정’ ‘울고 싶은 인생선’ ‘진정코 몰라주네’ ‘무정한 인생길’ ‘번지 없는 사랑’ ‘여수항구’ 등 12곡의 작품을 실었습니다. ‘강남주작곡집’ 제1집에는 ‘울고 싶은 마음’ ‘여인고백’ ‘여인탑’ ‘성산포 해당화’ ‘로타리의 밤’ ‘무정한 인생길’ ‘넋두리 김삿갓’ 등이 실려 있습니다. 1962년에는 부산 서면을 테마로 한 ‘로타리의 밤’을 직접 작곡해서 가수 후랑크백의 노래로 취입시켰습니다. 가수 강남주는 1976년 부산에서 62세로 사망했습니다.

일제 말 암흑기에 가수로 데뷔해서 해방이후 새로운 활동으로 변신했던 분으로는 진방남(반야월)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가수에서 작사가로 전업했지만 강남주의 경우 가수에서 작곡가로 바꾼 특이한 사례입니다. 일제말에는 가창에만 전념하다가 해방이후 가요계의 한쪽 귀퉁이 부산의 변방지역에서 조용히 자신의 전문 활동을 펼쳐갔던 한 대중음악인의 생애를 곰곰이 더듬어봅니다. 가수에서 작곡가로 전업했던 강남주가 한국가요사와 부산가요사의 초창기 터전을 땀 흘려 일구어놓은 노력과 성과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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