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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21> 국가-플라톤(기원전 428~347)

플라톤이 말한 올바른 나라 … “아이들 강압교육 말라, 남녀 평등하라”

  • 서부국 서평가·세상관찰자
  •  |   입력 : 2021-06-24 19:40:3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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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앎·정의가 구현되는 정치체제
- 철인이 다스리는 ‘칼리폴리스’
- 2600년 전 혁신적 주장 펼쳐
- 서양 첫 정치철학서 칭송받아

-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 사유재산 가지지 않은 통치자
- 남녀 구분 없이 가능한 지도자
- 어린이부터 받아야 하는 교육
- 정치가 뭘 좇아야 하는지 일깨워

- 내년 대통령 선거 앞둔 대한민국
- 진정한 리더의 ‘칼리코리아’로

“이것이 나라냐.” 집단지성이 드러나는 포털 댓글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탄식이다. 정말, 궁금하다. 진정한 나라는 어떠하며, 정치는 무얼 좇아야 하는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명저 ‘국가[폴리테이아, 정체]’에서 앎과 정의가 구현되는 정치체제(政體, Politeia), 지혜를 사랑하는 철인이 다스리는 칼리폴리스(kallipolis)를 갈망했다. “나라는 올발라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올바름’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신전은 신을 모시는 공간이자 시민이 모여들어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장소였다. 파르나소스 유적지 내 아폴론을 기렸던 델피 신전.
2600여 년 전, 이런 주장은 혁신이었다. 서양철학이 여기서 싹 텄다고 한다. 남녀 모두 통치자가 되는 게 가능하다며 양성을 평등하게 보았으니 한참 앞서 나갔다. 우리가 지금도 아리송해하는 철인 개념을 그는 명쾌하게 풀었다. “최선자(最善者)다. 훌륭함(덕·좋음·아름다움)이 깃든 혼(마음·성향)을 지녔다. 지성 교육을 받고 신체를 단련한 뒤 나라를 통치할 유일한 인물.” 통치자는 앎(지성)을 기반 삼아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중에게 좋은 삶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나라가 맡는 ‘평생교육’이 중요하다. 이때 강조한 점. “어린이에게 교육을 강제하지 말라. 억압한 교육은 혼에 남지 않는 탓에 쓸모가 없다.” 놀이하듯 자유롭게 교육하라고 외쳤던 플라톤, 지금 봐도 호감 가는 선각 교육자다.

플라톤은 자신이 구상하는 정치공동체가 유토피아나 다름없어 현실에선 구현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올바른 삶’ 사상만큼은 끝까지 지킨 보루. 가령, 통치자는 어떠한 재산도 사유(私有)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지도자는 엄격한 도덕성을 갖춰야 하니까(예나 지금이나!). 플라톤 정치공동체는 의식주·배우자·자녀를 공유하며, 출산·교육도 함께 책임진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해 행복한 사회를 이룬다는 논리. 인류가 지금껏 못 이룬 이상향이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이 시점, 솔깃해진다. 이상(理想)은 역사 수레바퀴를 미는 보이지 않는 힘이니까.

‘국가’는 10권이지만 권당 50~80여 쪽으로 짧아 단행본으로 묶인다. 소제목이 없이 소크라테스와 아데이만토스·글라우콘(플라톤 형들)이 나눈 대화가 이어진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입을 빌려 발언한다고 보면 된다. 소크라테스 주장을 옮긴 다른 여러 대화편과는 달리 플라톤 색채가 짙다. 분량상 플라톤 전집 중 20% 정도이니 비중이 크다. 다루는 주제가 정체에서 형이상학 윤리학 인식론 예술론 교육론 혼(심리학)까지, 아주 폭넓어 플라톤 주저로 손색없다.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이 계발한 고유 철학이 드러난다.

제목 ‘국가’는 당시 도시 국가 폴리스다. 플라톤 고향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통치 때가 가장 번성했는데 31만여 명이 살았다. 현재 부산 해운대구 인구 수준. 폴리스들은 정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런 시대 과제가 신진 지식인인 철학자들을 불렀다. 이전까지는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같은 대시인이 쌓은 시가(詩歌) 중심인 기존 고대 정신세계가 주축. 철학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에서 제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국가’ 1권 서두는 이렇다. 아테네 외항에서 열린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던 소크라테스를 본 그곳 유지가 그를 초청한다. 여기서 여러 사람과 대화한 내용을 다음 날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1권이 시작된다.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이 화두. 강한 자의 편익이 올바름이라고 강변하는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를 소크라테스가 논박과 산파술 대화로 깨우친다. “올바름은 훌륭함이자 지혜이며, 올바르지 못함은 무지이자 나쁨이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며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을 부정했었다. 올바름 실체를 찾아 2권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2, 3권에선 어린이 교육을 다뤘다. 어린이는 장차 통치자가 될 동량. 2권 전반부에서는 교육이 이뤄지는 곳 즉 나라를 설명한다. 나라가 건국돼 커지면 그 수준이 드러난다. 올바른 나라를 유지하려면 합당한 혼을 가진 어린이가 필요하며 이는 교육에 달렸다. 이전엔 시인이 맡았고 ‘시가’는 교과서. 철학가들은 “시가 대부분은 신화 설화를 다루는데 등장하는 신들에 대한 묘사가 어린이가 보기엔 저질”이라고 딴지를 걸었다. 3권이 그러한데, 시인이 지켜야 할 규범이 제시된다. 그들은 허황한 지옥 묘사, 신성 모독, 지나친 희로애락 표출, 사리사욕과 부정 얘기로 젊은이 혼을 어지럽힌다고 꼬집었다. 교육엔 체육도 중요하다는 요지가 3권에서 더해진다. 체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혼화(크라시스) 교육이다.

4권에서는 올바름이 나라와 개인을 대상으로 고찰되고, 5가지 정체·혼을 보여준다. 올바른 나라에선 지혜 용기 절제가 실행되며, 개인은 제 것을 갖고 제 일을 하게 된다. 정치판을 기웃대는 교수,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법조인, 직무로 알게 된 정보로 축재하는 공사 직원을 플라톤이 봤다면 ‘악인’이라며 손가락질했을 터. “용기를 가진 수호자(통치자)는 바르고 준법하는 소신으로 나라를 올바르게 만든다.” 5권에 ‘남녀평등권’이 등장한다. 올바른 나라를 운영하려면 최고 자질을 갖춘 남녀 수호자가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유토피아 정치공동체다. 이는 스승 소크라테스에게선 볼 수 없는, 플라톤 고유 사상. 그는 나라 구성원이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해 ‘기쁨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런 훌륭한 ‘본’이 생기면 나라는 분열되지 않고 하나를 이룬다는, 살짝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옥에 티. 최고 수준 남녀와 그렇지 않은 남녀로 갈랐다. 평등사상 속 차별이다.

당연히 이런 나라가 가능한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데 기다렸다는 듯 답이 나온다. “철인이 나라를 다스리면 됩니다.” 철인 치자 사상이다. 이 즉답은 당시 정치인들이 목숨을 내놓으라고 위협할 만한 폭탄 발언. 이를 의식한 플라톤은 방어막을 쳤다. 철인이란 직업 철학자를 뜻하지 않는단다. 이어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인이 어떤 사람이며, 철학 인식에 필요한 교육에 대한 논의를 펼쳐 나갔다.

6권에서는 철학자 자질이 제시된다. 그들은 훌륭한 나라에 필요한 본이 되는, 실재에 대한 앎을 추구한다. 철학자가 나라를 경영하게 되는데도 현실 속 그들은 환영 못 받고, 철학은 무용한 학문으로 낙인찍힌다는 푸념도 나온다.

이런 철학자는 교육으로 양성되며 ‘좋음[德]의 이데아’를 가장 큰 배움 목표로 삼는다. 이를 ‘태양·선분의 비유’ 같은 인식론으로 설명했다. 남녀 통치자가 탄생하는 과정이 7권에서 묘사된다. ‘내리막 동굴 속 죄수’ 비유가 유명하다. 청년은 20세부터 10년간 수론 화성학 같은 5가지 교과로 예비교육을 받고 변증학 공부와 신체 단련, 실무 경험을 한 뒤 50세가 되면 통치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

8권은 바람직한 최선자(왕도) 정체가 변질한 네 정체, 즉 명예지배·과두·민주·참주정과 이에 해당하는 통치자 유형을 보여준다. 이 중 참주정(tyrannis)이 최악. 이에 견줘 최선 지도자를 “시가와 혼화된 이성을 갖춘 자”로 봤다. 참주정형 통치자는 9권에서 비난받는다. 욕망을 충족하려 어떤 악행도 서슴잖는 그는 가장 올바르지 않고, 최고로 비참한 자이다.

   
마지막 10장에서 플라톤은 훌륭하고 올바른 나라(칼리폴리스)는 철학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철학은 실재와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 생전 이런 훌륭한 삶을 보내면 영혼이 불멸하는 사후에도 값진 보상을 영원히 받는다는 주장으로 ‘국가’를 마무리한다. 이 고전은 저자 사상이 무르익은 60대에 나온, 서양 첫 정치철학서다. 칼리폴리스를 이루고자 평생 고민한 플라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도 그 고민 앞에 섰다. 이 땅에 ‘칼리코리아’가 들어서고 걸맞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대선이 되길 유권자는 고대한다. 플라톤 ‘국가’는 잊힌 이상향 정치공동체를 향한 꿈을 다시 일깨운다.

서부국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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