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영화계 대부 김사겸 감독
- 지역 기반 활동으로 평가절하
- 로케이션 촬영 영화 제작부터
- 단편영화제 창설 이야기까지
- 여러 업적과 헌신적 활동 소개

부산의 한 젊은 영화 평론가는 2019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시상식 뒤풀이에서 백발의 노인을 만난다. “그 할아버지가 하시는 옛날 영화 이야기가 정말 재밌는 겁니다. 심지어 전설의 이만희 감독판 ‘만추’(1966)를 개봉 당시에 봤다고 하셨습니다. 기주봉 배우가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쓰라고 하자,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럼 제가 쓸게요!”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1981년생 시네필과 1935년생 영화감독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 감독이 부산 영화계의 대부인 김사겸(사진)이다. 김 감독은 1950년대 영화 기자로 일하다가 유현목 감독의 제1조감독으로 영화 현장에 뛰어들어 ‘창수의 전성시대’ 등 여러 작품을 연출했다. 1977년 부산에 내려와 침체한 부산영화평론가협회를 부활시키고 부산지역 영화제 창설에 기여, 2010년 부산시 문화상을 받았다.

김사겸 감독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김 감독의 영화 이야기는 생생하고 흥미롭다. 1964년 ‘돌아온 여군(7인의 여포로)’을 연출한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에 걸려 감옥에 가게 됐는데, 이 영화를 옹호한 평론 ‘은막의 자유’도 문제가 됐다. ‘왜 영화에서 인민국 제복을 제대로 안 입히느냐, 옷을 제대로 입혀야 현실감이 살아난다’는 내용이 반공법에 걸린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 평론을 쓴 이는 유현목 감독이었지만, 사실 진짜 저자는 김사겸 감독이었다.

부산이 로케이션 촬영지로 유명해진 출발점에도 김 감독이 있다. 가수 윤시내의 히트곡 ‘열애’의 작사자, 부산 MBC DJ 배경모의 삶을 영화화 한 ‘열애’가 김사겸 감독이 기획에 참여해 부산 최초로 로케이션 촬영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는데, 이후 ‘사람의 아들’ ‘바보들의 행진’ ‘아낌없이 주련다’ ‘꼬방동네 사람들’ 등 당대 인기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영도 자갈치시장 태종대 등을 배경으로 잇따라 나왔다. 당시 부산 촬영지를 섭외하기 위해 김 감독을 찾는 제작자가 많았다고 한다. 훗날 김 감독은 부산영상위원회 창립 멤버로 활동한다.

제1회 주간국제 영화배우 선발대회에 참석한 감독 평론가 배우와 배우 지망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잎새달 제공

부산은 또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성행한 소형영화 운동(오늘날 독립영화 제작의 모태)의 메카였다. 소형영화운동은 8㎜ 필름 영화를 만드는 동호회 활동으로, 부산에 동호회 수가 가장 많았다. 1970년대에는 배우 선발 대회가 부산에 생겨 배우 등용문이 됐다. ‘주간국제영화배우선발대회’로, 당시 국제신문이 자매지로 발간한 주간국제가 주최한 행사였다. 김 감독이 인맥을 총동원해 유현목 김호선 감독과 배우 장미희 소설가 최인호 등 당대 유명 예술인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켰다.

김 감독은 부산영화인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에 부산국제단편영화제의 전신인 한국단편영화제를 만든다. 그는 뜻이 맞는 영화인과 의기투합해 영화제를 만들고 직접 출품작 심사도 봤다. 저자인 김도연 평론가는 “김사겸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인물인데,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소외됐다. 영화사 측면에서 꼭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책을 추천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김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2세대 평론가로서 가진 모든 것을 부산에 쏟아 부었다. 김 감독과 허창 평론가 부산대 장갑상 교수 등의 꿈을 현실화한 것이 BIFF다. 이런 분들을 주제로 한 영화사 저술이 계속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