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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자산어보’ 배우 설경구

28년 연기인생 첫 사극…흑백화면 속에서 힘 빼고 제대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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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 ‘소원’이후 재만남
- 신유박해로 유배된 정약전 맡아
- 어부와 벗이 되는 이야기 그려

- “실존인물 흑백영화 부담컸지만
- 즐기며 찍자는 마음으로 촬영
- 시나리오 몰입하니 편해지더라”

- 이정은·변요한과 찰떡 호흡도

‘박하사탕’ ‘공공의 적’ ‘실미도’ ‘해운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살인자의 기억법’ 등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영화에서 선 굵은 연기로 사랑받아온 설경구가 데뷔 28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던 사극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천주교 교리를 따른 죄로 흑산도에 유배당한 정약전 역을 맡아 처음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준익 감독과 설경구가 ‘소원’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 ‘자산어보’(개봉 31일)는 흑산도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설경구는 천주교 교리를 따른 죄로 흑산도에 유배당한 정약전 역을 맡아 한복을 입고 수염을 붙인 모습을 스크린에서 처음 보여준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에 이어 ‘자산어보’도 흑백으로 촬영했는데, 설경구의 첫 흑백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사극 영화 출연 제의는 있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는 설경구에게 사극 영화에 도전하게 된 과정과 실용적 학문에 눈을 돌린 정약전 캐릭터, ‘자산어보’ 촬영 이야기 등에 대해 들었다.

■이준익 감독과 사극 도전

몇 해 전 한 영화상 시상식에서 이 감독을 만난 설경구는 구상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다짜고짜’ 달라고 한 것이다. “이 감독님과 ‘소원’을 같이 했었는데, 어려운 이야기를 잘 담아줬기 때문에 신뢰와 감사함이 있었다. 언제고 다시 한 편 더 하고 싶었는데 마침 사극을 쓰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사극은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하자 얼마 후에 ‘자산어보’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큰 끌림이 없었다. 주인공인 정약전 대사를 중심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영화의 전체가 보이게 됐고 서서히 젖어들게 됐다. 전체를 보니까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더라. 세 번째 읽을 때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눈물이 나더라.” 그렇게 설경구의 사극 연기 도전은 시작됐다.

‘자산어보’를 보면 “왜 이제야 사극에 출연했지?”라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한복과 수염이 잘 어울렸다. “처음에는 한복을 입고 수염을 붙인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됐다. 사극과 인물에 맞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걱정도 있었다. 초반에는 수염을 붙이니 입도 잘 안 벌려지는 것 같았지만 이 감독님을 믿고 며칠 촬영하니까 익숙해지더라.” 배우들은 누구나 촬영 초반에는 인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사극이라는 장르의 어색함도 있었겠지만 정약전에 이입되기 위한 시간일 수도 있었겠다.

‘자산어보’는 사극이기도 하지만 흑백 영화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흑백 영화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다른 주변의 사물이 지워지고 온전히 배우에게 집중하게 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흑백이라서 더 신경 쓴 것은 아니고, 이 감독님이 흑백은 배우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서 거짓말하면 다 들킨다고 하셨다. 그 말이 연기의 전체 틀이 됐다. 좀 더 집중해서 진실되게 앵글 안에서 놀자고 했다.” 그런 거짓 없는 연기 덕분에 ‘자산어보’를 보고 있으면 어느 덧 설경구가 지워지고 정약전만 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약전과 함께 한 배우들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과 창대 역으로 호흡을 맞춘 설경구(오른쪽)와 변요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자산어보’에서 설경구는 ‘역도산’에 이어 두 번째로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배우들은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의 경우 배우의 생각이 너무 들어가면 자칫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연기의 폭이 한정되기도 한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쓴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바꿔 달라고 하는데 ‘역도산’이나 ‘자산어보’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다만 영화가 성리학이나 철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접근하려고 했다.”

정약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의 톤에 맞게 연기했다는 뜻이다. “정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필요 없고 심지어 임금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지닌, 당시에는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고를 하던 사람이다. 계급 없이 평등해야 한다는 수평적 사고를 하는 인물이라 흑산도에 유배 와서는 민중에게 실질적으로 이로움을 주는 ‘자산어보’를 쓰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사고는 수평적이었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양반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인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창대에게 ‘저런 상놈의 자식’이라고 말하고, 의관을 갖추고 죽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다.” 설경구는 성리학을 숭배하던 시대와 불화를 겪었던 실학자 정약전으로 서서히 물들어갔다.

그는 ‘자산어보’의 촬영에 대해 “섬에 들어가 배우, 스태프와 한 판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했다. 그와 함께 큰 판을 함께 만든 배우는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하며 우정을 나눈 이정은과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 변요한이었다. 이정은은 정약전에게 지낼 곳을 내주는 가거댁으로 출연해 은근한 로맨스도 꽃피운다. “정은 씨와는 대학 시절부터 오누이처럼 아주 친하게 지냈던 사이다. 둘 다 허얘서 백돼지라고 불렸다. 워낙 편해서 서로 부담 없이 찍었다. 정은 씨가 가거댁으로 있어서 든든했다.” 변요한은 흑산도 토박이로 바다 생물과 물고기에 대해 잘 아는 청년 어부 창대 역을 맡아 정약전의 ‘자산어보’ 집필에 큰 도움을 준다. “요한이는 영화 현장을 참 좋아했고, 거지 같은 창대 의상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실제 흑산도 사람 같은 분위기가 나서 내가 덕을 많이 봤다. 개구져 보이는 얼굴도 귀여웠다.” 이외에도 정약용 역의 류승룡을 비롯해 정진영 김의성 방은진 최원영 조우진 윤경호 등이 우정 출연하는데, 모두 흔쾌히 ‘자산어보’에 힘을 보탰다.

■28년의 연기, 그리고 땀

1993년 극단 학전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연극 ‘지하철 1호선’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쉼 없이 연기를 해온 설경구는 어느 때부턴가 연기의 루틴이 생겼다. 그는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땀’이라고 했는데, 촬영 전에 무조건을 땀을 쭉 빼고 가기 때문이다. “촬영이 새벽 5시면 서너 시간 전에 일어나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린다. 그러면서 힘을 빼놓는 것이다. 그것이 룰이 됐다.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힘으로 밀어붙여서 연기한 것 같은데 요즘은 좀 편해졌다.”

설경구의 초창기 영화를 보면 마치 자학하듯 연기를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어느 때부턴가 힘을 빼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분이 내 연기가 장미 같다고 했다. 가시가 너무 많아서 예쁜데 불편하고 힘들다고 하더라. ‘박하사탕’ 때는 그게 너무 심했고. 그게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다. 영화의 장르는 변하는데 그 틀 안에서 계속 연기를 해왔던 것 같다. 그것을 좋은 말로 힘으로 밀어붙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카메라에 섰을 때 집중하려고 해서 더 편해진 듯하다. 물론 어떤 영화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산어보’에서는 설경구의 즐기는 연기, 혹은 노는 연기를 맛볼 수 있다.

   
현재 이혜영 감독의 ‘유령’을 촬영 중인 설경구는 “사극을 한 번 더하고 싶다. ‘자산어보’는 흑백이니까 컬러로 그 시대의 색깔을 담은 정통 사극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배우들이 사극의 매력에 빠지면 오래간다고 하는데, 정통 사극에서 스크린을 압도하는 그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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