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에게 용기를 가르쳐주는 존재는 누구일까? 만화영화 속의 ‘또봇’ ‘카봇’이라고 하면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쓸쓸한 현실이다.
스마트 기기의 빠르고 자극적인 영상이 자녀의 육아를 돕는 오늘날 느린 호흡의 동화책이 나왔다.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에 쓰인 책이라고 하니 요즘 아이들에게 와 닿을까 싶었는데, 책을 펴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림부터가 재미있다. 고추밭을 터는 도둑에 맞서는 고추들의 모습이 김용철 그림 작가의 솜씨 덕에 하나하나 생동감이 넘치는 데다 울긋불긋한 고추 밭의 모습과 불의로 상징되는 도둑의 명암 대비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 긍정적인 문장도 아이 키우는 부모가 봤을 때 공감이 간다. “화를 내는 건 더 어리석은 걸. 용기를 내자꾸나.” “용기?” “그래 작은 고추가 맵다고, 꾀를 쓰자는 거야.” 이 책의 대상 독자는 4세 이상. 통상 아이들이 만 4세가 되면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고 의젓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겨야 하는 시기인데, 현실은 쉽지 않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삶의 환경이 바뀌지만, 엄마 아빠는 돈을 번다고 늘 곁에 있어주지 못하니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은 친구들과 힘을 모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어린 고추들의 분투기를 축제처럼 보여준다.

“차츰 고추들은 빨간 빛깔 속에 간직해 뒀던 피가 끓어올랐습니다. 불의와 싸우자. 싸우자!” “자루가 점점 부풀어 올랐습니다. 속이 꽉 찬 풍선처럼 커졌습니다. 영차! 영차!”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고추 자루가 폭발했습니다.” “파편이 날아 오르듯, 고추들이 하늘 위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와아 만세!”

삶이 늘 격변으로만 가득하다면 불안 속에서 안정은 없을 것이다. 동화 속 고추들은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팡’ 터진 자루에서 튀어 나와 하늘 위에서 춤춘 뒤 본래 있던 가지에 제각기 사뿐사뿐 꼭지들이 걸린다. 더러는 남의 자리에 걸리기도 하지만, 고추들은 안심하고 방긋방긋 웃는다.

읽다 보면 어느 새 어른도 위안이 된다. 잠시 흠집이 나거나 틀어지더라도 별일 아니니 삶을 “영차 영차” 힘차게 살아가면 된다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김 없이 아침이 되면 동이 트고 곁에는 위안과 힘이 되는 친구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