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에 전쟁, 그것도 타국의 내전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겠으나 베트남전쟁만큼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찌민이 이끄는 북베트남과 미국이 지지하는 남베트남은 또 다른 전쟁으로 치닫는데, 당시 한국도 미국의 편에서 32만여 명을 파병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역사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청년들의 희생이 미국의 보상으로 돌아왔고, 한국 경제 부흥과 도약의 계기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책 ‘기억의 전쟁’은 그러나 경제개발 신화의 한 축으로만 기억되는 이러한 역사에 의문을 품게 한다. 그동안 잘 언급되지 않았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며 전쟁의 참상과 국가폭력의 실체에 다가선다. 지난해 2월 개봉한 이후 지난 25일 재개봉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과정을 책으로 펴낸 것인데, 그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쟁’이라는 소재를 여성이 다뤘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 의해 정확한 진상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으나, 당시 파병 군인에 의해 베트남에서 80여 건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고 9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학살이 벌어진 마을 곳곳에는 당시의 참상을 증명하듯 증오비와 위령비가 세워졌는데, 지금도 증오비가 선 곳 중 일부는 한국인이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들은 2015년부터 수년간 영화 촬영을 위해 베트남을 찾아 증오비 위령비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이름과 그나마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보자인(‘무명’이라는 뜻의 베트남어)’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 전쟁의 생존자도 만난다. 학살로부터 50년이 흘렀으나, 누구도 사과하지 않아 용서하지 못했다는 피해자들은 나이가 들었고 일부는 세상을 떠났다.

책에는 영화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저자들의 심경과 고민도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넉넉지 않은 제작비를 모아 현장에 가놓고는 역사의 무게 앞에 쉽게 카메라를 들지 못한 경험, 예의를 갖추며 차근차근 피해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 모두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그동안 외면해온 ‘불편한’ 역사와 대면하게 하는 이 책은 앞으로 우리가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문하게 한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