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후 만화제작 형태부터
- 출판·서점 만화의 소비 붐 오롯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로서 부산에 많은 문화계 인사가 모여들어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 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때 만화도 문화 붐의 한 축을 차지했고 지금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작가가 된 이들이 부산에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의외로 적다. 당시의 만화가 어떤 형태로 제작됐고 소비됐는지를 다룬 내용이 만화책으로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50년대 당시 인쇄시설이 남아있던 부산에서 서점만화 ‘밀림의 왕자’(그림 왼쪽)가 대히트를 치자 만화출판사와 유통사 등이 국제시장 인근에서 자리잡는 등 호황을 누렸다.

‘1951, 소년만화가 열전-부산 현대 만화사 이야기(해성출판사)’는 만화연구가 안지혜 씨와 당시 부산의 ‘정치일보사’에서 사환으로 근무했던 박기준 씨가 글을 쓰고 강설송 작가가 그림을 그려 만들어졌다. 최근 발행된 이 책은 피란수도 부산의 문화 중 하나였던 만화에 대해 알려주는 것으로 의미가 크다.

안 씨는 “1950년대 한국 만화에 대한 연구가 없어 이 주제로 지난해 부산대 디자인학과 박사과정에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 만화 제작 진흥사업’이라는 지원사업에 공모를 하고 선정이 돼 6개월 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완성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역사물이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접하기 쉬우려면 만화책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출판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이니 우선은 만화책으로 발간하고 이후 웹툰화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은 비극이었지만 부산은 당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으며 인쇄 시설도 남아 있어 만화 출판이 가능했다. 당시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도 흡인력이 있겠지만 만화로 당시 상황을 보게 되니 더욱 새롭고 눈이 간다. 책에서 소년 박영준으로 정치일보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만화 그리는 데 관심이 있는 캐릭터는 공동저자 박기준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박 씨는 “당시 만화는 ‘뽑기만화’라고 해서 길거리와 문방구에서 팔던 게 유행이었다. 과자를 사면 경품으로 끼워주는 ‘떼기만화’로도 불렀다. 이런 만화를 청소년 작가들이 많이 그렸다. 당시 정부는 만화로 국가 시책 홍보나 여러 캠페인을 제작해 배포했는데 기성 작가들은 국가기관에 배속돼 일하느라 자신의 작품을 내지는 못했다 ”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미술학도였던 서봉재가 부친이 갖다 준 일본 동화 ‘소년 케냐’를 만화책 ‘밀림의 왕자’로 만들어 ‘세계문화사’에서 출판하자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무래도 뽑기만화는 형태나 스토리가 조악했으므로 책으로 나온 만화가 주목을 받게 된 것. ‘소년만화가 열전’의 감수를 맡은 윤기헌 부산대 교수는 밀림의 왕자에 관해 “부산에서 서점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박 씨는 “지금은 고인이 된 고우영, 신동우 작가도 부산에서 활동했는데 정작 부산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번에 낸 책으로 그런 사실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당시 데뷔한 청소년 작가로 서봉재와 고우영, 신동우, 박현석, 박기준 등이 있다.

작화를 맡은 강 씨는 이 책이 첫 작품이다. 강 작가는 “1950년대의 거리모습이나 집안의 모습, 생활상, 주인공이 입는 옷 등 배경을 고증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당시의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찾기도 어려웠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