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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오옷! 예술 <5> 송년 에세이 2020 - 다가와서 예술이 되어준 일상의 몇 장면

  • 국제신문
  •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  |  입력 : 2020-12-20 1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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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 찾아갈 만한 예술 현장을 찾지 못했다. 취소나 연기가 많았다. ‘그래도 연말’이라 좀 바빠 그나마 판을 펼친 곳에도 찾아갈 짬을 좀체 내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봉권의 오옷! 학술’로 살짝 방향을 틀어 책이나 학술 이야기를 하려 해봤다. 그러 자니 좀 딱딱하고 무겁다. ‘그래도 연말’ 아닌가. 궁리 끝에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는 게 아니라 일상이 다가와 예술이 되어준 장면을 꼽아보기로 했다. ‘송년 에세이 2020-다가와 예술이 되어준 순간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예술이 잠깐 멀어진 듯한 요즘, 여러분도 이런 장면이 다들 몇 개씩은 있으리라 믿는다.



   

웃는커피-10월30일


●커피가 웃어주었다

10월 30일 하동 북천 이병주문학관 가는 길이었다. 휴게소에 들렀다. 커피를 마시려는데, 커피가 웃고 있었다. 고민이 우박 같은 날들이었다. 짜식, 고맙게. 나도 웃어주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힘도 좀 났다. 커피의 함박웃음은 내게 예술작품 부럽지 않았다. 이 웃음이 내게 이 글을 써보도록 용기를 줬다.



   
부산동구168계단. 작품명 ‘별을따는아이’. 책임작가 나인주, 참여작가 민경호 박지영 최호준


●168계단, 저 까마득한 수직 속에도

10월 4일, 걷다가 걷다가 부산 동구 초량동 168계단에 닿았다. 이 계단 아래서 위를 쳐다보면 까마득한 수직이다. 부산의 정체성이 ‘수직과 계단’이 아닐까 느낄 정도다. 저길 어떻게 걸어서 오르나? 트램을 타면 되기는 된다. 그날은 걸었다. 꽤 높은 곳에 닿았을 때 문득 불쑥 ‘별을 따는 아이’라는 벽 조형물을 만난다. 아이의 이름은 ‘동구’다. 책임작가 나인주, 참여작가 민경호 박지영 최호준이라고 써놓았다. 수직 골목 아주 높은 곳에 별을 따는 아이가 있다. 사막이 샘을 품고 있는 것처럼.



   
경주 원원사지 동서석탑.


●절은 숲이 되고 무덤이 되고, 탑은 남아…

올해 만난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 경주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 동서석탑.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이다. 김유신 장군, 당시 밀교 계통 불교 승려들 이야기가 얽혀 있다. 그 실화가 주는 실감에 온몸 감각은 곤두섰다. 탑을 봐선 옛날엔 큰 절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소나무가 자라 울창한 솔숲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됐다. 누가 언제 썼는지 몰라도 탑 사이에 조그맣게 봉분이 솟아 있고 다행히 이를 그대로 뒀다. 한국 석탑 풍경 가운데 가장 독특하지 않을까? 바람이 불어왔고, 한참 앉아 있었다. 9월 25일, 여기서도 ‘삼국유사’를 만났다.




   
경주원원사할머니보살과고양이모녀

●할머니 안녕하세요, 고양이들도 성불하세요

경주 원원사지에서 할머니 보살님을 뵈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쓰느라 우리 땅 곳곳을 다니며 민중을 만났고 민중의 이야기를 들었다. 민중은 역사를 이렇게 기억하는구나 깨닫고 ‘삼국유사’에 실었다. 민중의 그 기억이 말하는 건 무엇일까? 잘은 몰라도 그속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것이다.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다. 그것이 국제신문에 현재 연재 중인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을 국제신문, 상지건축이 손 잡고 정천구 박사와 함께 기획한 이유다. 할머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고양이 모녀도 성불하기를 기원할게.




   
BIFF2020 개막일-10월21일.

●BIFF도 ‘영전’도 쓸쓸함은 피해가지 못했고

10월 21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에 찾아간 영화의전당은 아무리 달리 생각하려 해도 ‘쓸쓸하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화면 속 배우조차 약간 외로워 보였다. 관객은 빨간 의자에만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2020년의 한 풍경이다.




   
부산 영도 절영해안산책로-10월9일.


●‘대면’은 그리웠고, 바다는 스크린이 되고

공연은 취소되고 축전은 연기되고 전시는 안 열리고 문학은 들어앉고 온라인으로 보려니 왠지 심심할 것 같고…. 10월 9일, 갈 곳을 못 찾고 부산 영도 절영해안산책로를 화난 듯 열심히 걷기만 할 때 갯바위에 앉아 바다를 스크린처럼 보고 있던 사람들 뒷모습과 만났다.



   
식당 차림표. 10월19일


●아! 식당 차림표에서 힘을 얻다니!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영감과 식당 차림표에서 받는 기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마음이 허해져서 그랬을까? 차림표에 ‘돼지갈비 8000원, 공기밥 1000원’만 달랑 써놓은 장면이 조금은 ‘뚝심 충전소’ 같은 느낌이었다. ‘돼지고기 국내산, 쌀 구미 선산, 김치 순국내산’에서도 입 꽉 다문 일관성 같은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먹게 됐다.




   
충무동해안시장-11월14일


●시장에 갔다, 살아야겠다

내친김에 시장에 가보았다. 11월 14일이었다. 마스크를 꽁꽁 동여매듯 쓴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흥정했다. 막걸리도 마시고 있었다. ‘조보금 여사 아들 행안부장관상 수상, 축축’ 펼침막을 보고는 누군지 모르는 그분들께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아!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들 살고 있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야겠다.

 저 순간은 저 펼침막이 내게 일종의 훌륭한 설치미술작품이었다.



   
부산 서구 이태석신부기념관. 12월 12일.


●이태석 신부는 음악을 사랑했었지

이태석신부기념관이 부산 서구 천마로에 생겼다. 이태석 신부의 10형제(신부님은 아홉째다)가 ‘오골오골’ 살았을 생가, 이태석 신부가 하느님과 음악을 만난 송도성당 곁이고, 이태석 신부가 졸업한 천마초등학교도 가깝다. 12월 12일에는 일부러 이곳을 찾아갔다. 철통같은 방역 터널을 통과해 전시실에 들어섰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읽은 지 오래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남수단 아이들을 모아 음악 밴드를 만들어 이곳저곳 연주하러 다닐 때 일화였을 것이다. 어느 휴게소에서 쉬어 가려는 참인데, 그곳에서 밴드 연주를 들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콜라였던가 환타였던가 음료수를 쫙 돌린 이야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렇게 신이 났다.

 아!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였고 동시에 음악인이었지! 그 힘들고 가난한 남수단에서 신부님은 예술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지! 신부님, 우리한테도….





   
승학산 정상-11월28일.

●강물 모여 바다에 이르듯


 11월 28일, 승학산에 올랐다. 가장 부산다운 풍경이 승학산 정상에서 보인다. 칠백 리를 달려온 낙동강이, 흘러내려오면서 숱한 샛강 물줄기를 다 받아들인 낙동강이 바다에 턱 안기는 모습이다. 그걸 산에서 본다. 영화의 명장면 같다. 이 풍경 또한 내게는 예술작품이다.

 때로 일상은 예술이 된다. 숨어 있다가 다가와 예술 같은 순간을 준다.

 강물 모여 바다에 이르듯, 우리는 나아가리라.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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