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8>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윌리엄 포크너 (1897~1962)

형식도 문법도 파괴…1930년대 실험적 소설, 독자 놀라게 하다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0-12-03 19:20:05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아내의 장례 치르러 떠나는
- 남편과 그 자식들의 이야기
- 죽음을 대하는 방식 통해
- 보편적 가치와 부조리 통찰

- 본문 중 불쑥 나오는 고딕체
- 단어 대신 쓰는 기호·공백
- 점차 정체 드러내는 인물 등
- 읽는 이 집중력 배가시키는
- 독창적 창작 기법 호평받아

코로나시대가 인류 주검을 늘려간다. 시신이 안식할 곳조차 부족한 국가에서 존엄한 죽음이란 희망 사항. 가족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 보편 가치와 부조리를 통찰한 이 장편소설에 눈을 두게 된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제임스 프랑코 감독이 2013년 영화로 만들었다. 아버지 앤스가 모는 장례 마차에 자녀들이 탔고, 그 뒤를 아들 주얼이 말을 몰고 뒤따르고 있다.
예비지식으로 머리를 예열한 뒤 책 읽기를 권한다. 아일랜드 천재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1882~1941)처럼 포크너도 독자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 그가 쓴 소설은 대체로 어렵다. 같은 조이스 작품이라도 ‘율리시스’(1922년)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4년)보다 읽어내기가 몇 배 힘들다. 포크너 장편 ‘음향과 분노’(1929년)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년)에 비해 훨씬 난해한 것처럼. 두 작가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각각 ‘젊은 예술가의 초상’ ‘내가…’를 먼저 읽는 게 좋다. 이런 작풍은 당시 시대 인식에서 나왔다. 1차 세계대전 참상에 놀란 유럽·영미 지성인 예술가들은 다양한 실험·창작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그 행렬에 ‘잃어버린 세대, 모더니즘 작가’가 합류했다. 노벨문학상(1950년) 퓰리처상(1954·1962년) 수상 작가인 포크너도 그중 한 사람.

   
21세 때 윌리엄 포크너.
반전이 많은 소설이다. 줄거리를 세밀히 알고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15명 등장인물이 서술하는 59개 얘기로 이어진다. 이름이 제시되고 독백이 이어지는 형식은 당시 새로운 기법이었다. 요크나파토파(저자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시키는 가상공간)라는 가난한 미국 남부 마을이 무대다. 이곳에 사는 농부 가족은 질병을 열흘 앓다가 숨진 어머니를 장례 치르는데, 방식이 남다르다. 장지는 동네 공동묘지가 아니라, 타향인 고인 고향 제퍼슨 마을. 아버지와 자식들(아들 셋, 딸 하나)이 출상한다. 목관에 어머니 시신을 넣어 노새 마차에 싣고 한여름 무더위와 홍수를 헤치며 고인 고향으로 향하자 동네 사람들은 쑥덕댄다. 무더위와 홍수가 겹쳐 마차로 반나절 거리인 40마일을 가는 데 10일이 걸렸다. 평소 데면데면한 가족이 한 죽음 앞에서 보이는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제각각이다. 산 자보다 죽은 자를 더 각별히 대하는 이 부조리에 독자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등장인물이 누군지 처음엔 알기 어렵다. 이름만 명시될 뿐 아버지 ○○, 딸 ××하는 식으로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가 꼼꼼히 읽으며 책장을 제법 넘겨야 가족 구성원이 파악된다. 번드런 앤스(남편)와 애디(고인이 된 아내) 부부, 4남(캐시 달 주얼 바더만)과 1녀(듀이 델)이다. 독서 몰입도를 높이는 이런 기법을 두고 평단은 실험·독창성을 칭찬했다. 포크너는 시공을 초월한 다자 시점을 도입했다. 그는 노련하게 독자가 얘기 퍼즐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소설 속 실험성 강한 형식은 이렇다. 본문 기본 서체가 명조라면 드문드문 고딕을 써 생각·의식·속마음을 표시하기(‘의식의 흐름’ 기법). 행위 묘사 부분도 고딕이었다. 이런 구별이 아예 없었다면 독해하기 더 어려웠을 터. 1930년대엔 이런 시도가 참신했는데, 독자는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포크너는 언어는 의미 전달 수단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여겼다. 단어 대신 기호를 쓰거나, 공백으로 남기기도 했다. 책 속 한 구절. ‘캐시는 관을 벽시계 모양( )으로 만들어서, 이음매와…’ ‘처녀 적 내 몸의 모양은 이다’. ‘이다’의 앞 단어가 없다. 이런 ‘포크너 스타일’을 알지 못한 독자는 엉터리 문장이라고 혀를 찼을 게 분명하다.

포크너는 40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실었다. 어머니 애디 독백이 40번째. 장지 제퍼슨까지도 40마일(64.4㎞, 부산~밀양 거리). 기독교 신앙에서 40이란 숫자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헤매다 가나안에 도착했다. 고단한 번드런 가족 장례 여정을 이에 비유하고 싶었을까.

제목 ‘내가…(As I Lay Dying)’에서 ‘나’는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 ‘애디’다. 사자(死者)가 말하다니? 크나큰 애디 존재감을 은유한다. 서술어 ‘Dying’은 두 해석이 가능하다. 시중 출판된 책들에서도 두 가지 제목이 발견된다. ‘내가 자리에 누워 죽어갈 때(임종)’와 ‘내가 죽어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소설을 살피면, 애디 임종 때보다 사후 서술이 더 많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는 제목이 낫다. 애디는 핵심 주인공이지만 본문에선 단 한 번, 그것도 40번째가 돼야 나온다. 발언 내용은 폭발력이 대단하다. 셋째 아들 주얼과 관계된 혈통 비밀이 처음으로 폭로되기 때문.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삶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생각하며 서서히 죽어왔던 애디. 위장된 신앙을 거부하는, 고독한 실존주의자였다. 아내라는 의무감에서 자식을 낳아주었다. 둘째 아들 달이 태어났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가 죽으면 친정 땅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애디 독백에 나오는 삶(죽음) 사랑 고독 가족(남녀) 신앙과 같은 보편 가치관은 씁쓰레하고 허무하다. 그 인생에 독자는 동병상련한다.

고인 유언을 한사코 실행하려는 가족은 비장하다. 마지막 이별법인가. 범람하는 강을 마차를 몰고 건너다 떠내려온 통나무에 치인다. 강물에 빠진 마차는 간신히 건졌지만, 노새는 익사한다. 장남 캐시는 다리가 부러져 어머니 관 위에 부목을 댄 채 이송되는 신세. 아버지는 아들 주얼이 애지중지하는 말을 몰래 팔아 새 노새를 마련해 다시 길을 떠난다. 더워지면서 시신이 썩기 시작했다. 송장 악취가 1마일 밖에까지 퍼지자 행인들은 코를 싸매다 급기야 번드런 가족을 몰아낸다. 하늘엔 냄새를 맡고 모여든 말똥가리 무리가 선회하며 마차를 쫓는다.

둘째 아들인 달이 들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는 독백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장남 캐시 독백으로 끝난다. 속물이자 자기밖에 모르는 무능한 남편. 아내를 묻자마자 희비극을 벌인다. 고명딸 듀이 델. 말 못 하는 고민을 해결하려 애쓰지만, 남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다. 나름대로 슬픔을 표출해온 번드런 가족은 어느새 애디 기억을 지우려는 듯 행동한다. 이것도 망자가 맞이하는 한 과정일까.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달만큼은 그리 못 한다. 애디와 성품이 가장 많이 닮았다는 달. 어머니 죽음을 가장 가슴 아파한 자식은 귀향하지 못한다.

저자는 죽음을 대면한 인간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한다. 어머니가 앓아눕자 목수인 큰아들 캐시는 창문 아래서 열심히 관을 짠다.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어머니는 그 모습을 환히 본다. 목석같은 셋째 아들 주얼은 캐시가 못마땅하다. “엄마가 관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 꽤 보고 싶은 모양이지?”하며 대든다. 자기 방식대로 추모하는 캐시, 죽기 전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은 주얼이다. 막내 바더만은 너무 어려 죽음을 못 받아들인다. 그저 관 속에 누웠을 뿐인 엄마가 갑갑할까 봐 관 덮개에 구멍을 여기저기 뚫어 놓았다. 몽유병 환자 같은 달은 그저 먼 곳만 응시한다. 딸 듀이 델은 어머니에게 부채질하며 타인 접근을 막는다. 남편 앤스는 아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포크너는 이 책을 통해 삶에 섞인 부조리와 허무를 꼬집으면서도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내버리진 않는다. 저자 화법은 음울하고 쓸쓸하지만, 한 줄기 희망도 남았다. 누구나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 조금 더 먼저 떠나는 이를 보내고, 그대가 떠날 날이 다가올 뿐이라며 포크너는 독자를 포옹한다.

서평가·세상관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서병수 내년 부산시장 재출마 시동? 측근 그룹 ‘국가의 품격’ 포럼 꾸렸다
  2. 2651일 만에 일상회복 시작된다
  3. 3말 많던 이준석표 ‘공천 자격시험’ 결국 치른다
  4. 4여당 ‘원팀 선대위’에 쏠린 눈…PK선 최인호 역할론 부상
  5. 5KT 먹통에 전국 마비
  6. 6사직야구장 재건축 ‘본궤도’…부산시 기금에 롯데도 일부 부담
  7. 7신항 남컨부두 운영사 통합 움직임 솔솔
  8. 812월중 야외 노마스크…콘서트 직관도 가능할 듯
  9. 9노안과 백내장 함께 왔다면 ‘첨단 레이저’로 한번에 치료
  10. 10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2> 코로나병동 간호사 김혜리 씨
  1. 1서병수 내년 부산시장 재출마 시동? 측근 그룹 ‘국가의 품격’ 포럼 꾸렸다
  2. 2말 많던 이준석표 ‘공천 자격시험’ 결국 치른다
  3. 3여당 ‘원팀 선대위’에 쏠린 눈…PK선 최인호 역할론 부상
  4. 4야당, 윤영석 지명직 최고 임명…안철수 독자 행보에 공석 채우기
  5. 5지사직 내려놓고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정책으로 ‘역벤션’ 뚫을까
  6. 6“지방교부세율 15년간 제자리…25%로 인상을”
  7. 7문 대통령 마지막 시정연설 "K-방역·경제회복에 최선"
  8. 8국힘 4인 4색 충청권 ‘중원’ 표심 잡기 경쟁
  9. 9“부동산은 최고 개혁과제” 대장동 언급은 없었다
  10. 10PK 지방선거 후보군 잇단 윤석열 캠프행, 공천과 연계됐나
  1. 1신항 남컨부두 운영사 통합 움직임 솔솔
  2. 2엑스포 유치의 열쇠 ‘주제 선정’…세계 석학과 머리 맞댄다
  3. 3“철도시설에 차량비 포함 관례…트램도 똑같이 적용해야”
  4. 4디즈니 이어 애플TV+도 상륙…한국 OTT 시장 글로벌 각축장
  5. 5‘오징어 게임’ 자화상…한국 6명 중 1명 기본생활 못 누린다
  6. 6때이른 추위에 겨울상품 마케팅 유통가 바빠졌다
  7. 7신발·패션 미래 한 눈에…‘패패부산’ 28일 개막
  8. 8독도 바다서 베도라치과 한국미기록종 발견
  9. 9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런던협약 총회서 문제 제기
  10. 10한류열풍 타고 ‘K-푸드’ 전 세계 알린다
  1. 1651일 만에 일상회복 시작된다
  2. 2KT 먹통에 전국 마비
  3. 312월중 야외 노마스크…콘서트 직관도 가능할 듯
  4. 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2> 코로나병동 간호사 김혜리 씨
  5. 5오늘의 날씨- 2021년 10월 26일
  6. 6[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36> 수소와 탄소 : 인류의 문명
  7. 7그랜드호텔 부지 고급 리조트 추진…교통난 등 ‘산 넘어 산’
  8. 8부산 도로서 차량 사고로 40대 운전자 사망
  9. 9보건소 10명 중 1명 사·휴직..."순환근무 돌려 과로 막아야"
  10. 10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31> 차의과대학 일산차병원 배종우 소아청소년과 교수
  1. 1사직야구장 재건축 ‘본궤도’…부산시 기금에 롯데도 일부 부담
  2. 2유영 그랑프리 동메달…차세대 간판 ‘이름값’
  3. 3볼넷 남발 ‘송곳존(스트라이크존)’ 손질…경기 박진감 되찾을까
  4. 4인터넷망 사고로 연기된 삼성화재배 바둑 8강전, 26일 대회 다시 치른다
  5. 5여자 아시안컵 축구 본선 12개국 확정…한국 대표팀, 첫 번째 우승 노린다
  6. 6LPGA 부산대회 내년도 계속 열까
  7. 7해결사 이대호, 롯데 5강 실낱 희망 살렸다
  8. 833년 걸린 금자탑…고진영, 부산서 해냈다
  9. 9아이파크 ‘낙동강 더비’ 승리…리그 5위 확정
  10. 10황희찬 짜릿한 EPL 4호골
이병주 탄생 100주년 그를 회고한다
하태영 동아대 교수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불우한 삶을 살았던 작사가 한산도(韓山島)
리뷰 [전체보기]
옥주현·정선아 7년 만의 만남…‘초록매직’ 부산을 홀리다
새 책 [전체보기]
숨 쉬러 숲으로(장세이 지음) 外
세상 끝에서 춤추다(어슐러 K.르 귄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대한제국판 스릴 넘치는 첩보물
살아숨쉬는 한국 근현대사와 문학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쌍계사 범종 /우지아
겨울 갈대 /배종관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기적’의 배우 박정민
‘영화의 거리’ 김민근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아이돌 티 벗었네, 가을 스크린의 네 여우
새로운 OTT 공룡 온다…디즈니 發 지각변동 예고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쁘띠 마망’ 시공간 뛰어넘은 여성 삶의 연대기
피해자 서사의 시대…‘오징어 게임’
BIFF 리뷰 [전체보기]
‘와즈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10월 26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10월 25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힙스터 백종원의 색다른 술방, ‘백스피릿’
참을 수 없는 독서의 매력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10월 26일(음력 9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1년 10월 25일(음력 9월 20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2021년 10월 8일
오늘의 BIFF - 2021년 10월 7일
요즘 뭐 봐요- [전체보기]
요즘 뭐 봐요- 한소희 몸 던지는 액션신…K드라마 열풍 이어갈까
요즘 뭐 봐요- 탈레반 탄압에 가족 먹여살리려 남장…아프간 여성의 현실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연재를 마치며
우리 인생의 드라마 - 에필로그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귀양지에서 어머니 그리며 지은 허봉의 시
바닷길로 연행길 오른 사신 위해 쓴 이식의 글
  • 맘 편한 부산
  • 2021조선해양국제컨퍼런스
  • 제10회 국제신문 골프대회
  • 제23회부산마라톤대회
  • 극지논술공모전
  • 조선해양사진 및 어린이 그림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