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장수의 삶 연구한 저자
- 영생 아닌 건강수명 연장 위해
- 신체 노쇠 막아야 한다고 역설
- 자연 섭리 위배 비판에 반론도

우리는 노화를 순리로 여긴다. 늙는 게 싫다고 거스를 수도 없거니와 후대와 자연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거부해선 안 된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노화와 유전 분야의 최고 권위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는 이런 명제를 완전히 뒤집는다. 늙는다는 건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며 ‘질병’으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화의 종말’은 싱클레어 박사가 노화에 관한 세계의 최신 연구를 총망라해 정리한 책이다. 20여 년간의 장수 연구를 바탕으로 노화의 원인을 추적하고, 이를 ‘치료의 대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점이 흥미롭다. 건강한 삶을 위해 도움이 될만한 생활습관과 앞으로 눈여겨 볼만한 첨단기술 현황도 소개한다.

싱클레어 박사는 근본적인 노화의 원인으로 ‘후성유전적 잡음’을 꼽는다. 후성유전 정보의 저장과 전달은 세포 분화와 정체성 유지 등 생존에 필수 역할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변질·손상된다. 그러면 유전자A(환경이 나쁠 때 번식을 멈추는 기능)와 유전자B(상황이 좋을 때 A를 꺼 번식을 재개하는 기능과 DNA 수선기능)로 구성된 ‘생존회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즉 노화는 ‘정보의 상실’에서 기인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그랜드피아노의 건반을 실수로 계속 잘못 눌러 연주회를 망쳐 버리는 것’에 비유해 노화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파격적인 책의 제목처럼 노화의 종말은 가능한 것일까. 아쉽게도 지금 당장 ‘종말’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싱클레어 박사는 건강한 삶을 연장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화를 질병으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노화 연구자들이 전 세계에서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자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된다면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약물과 기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명 연장’에 대해 오래전부터 제기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미국만 보더라도 2003년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가 ‘치료법을 넘어서:생명공학과 행복의 추구’라는 보고서에서 노화 연구가 ‘인간의 본질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싱클레어 박사는 이와 관련해 “노쇠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부러진 뼈를 치료할 생각도, 소아마비 예방접종도, 여성들에게 칼슘 농도를 충분히 유지하고 운동을 함으로써 골다공증을 예방하라고 권고하는 일도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항변한다.

싱클레어 박사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노화 연구의 목적이 영생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이라는 데 있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게 아니라 ‘건강 수명’을 중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무한정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덜 아프면서 더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연구를 하는 이들 대다수는 노화와의 싸움이 죽음을 종식 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건강한 삶을 연장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훨씬 더 나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