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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3> '조선팔경가'에 나오는 해운대

北은 해운대를, 南은 평양을 가사에서 지웠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28 18:57:2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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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민족 의식 고취 위해
- 석굴암 아침·해운대 저녁달 등
- 아름다운 우리 국토 팔경 담아내
- 노래 원곡 분단의 격동기 겪으며
- 남·북한, 제각각 지명 바꿔불러

김용환의 노래 ‘낙동강’ 다음으로 손꼽을 만한 것이 바로 ‘부산노래’(염일화 작사, 손목인 작곡, 이은파 고복수 노래, 오케 1794)이다. 1935년 나온 이 노래는 안타깝게도 그 음원을 찾을 길 없어 원곡의 분위기를 더듬어볼 길이 없다. 필시 부산의 여러 특징이 잘 담겨진 노래였을 것이다. 쉽게 깨어지고 원형을 보존하기 어려운 SP음반(일명 돌판)인지라 사라진 음원들이 결코 적지 않다. 이토록 험난했던 근현대사,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을 견뎌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음반들은 참 고맙고 장엄하다. 1936년 폴리돌레코드에서 발표된 신민요 ‘조선팔경가’(편월 작사, 형석기 작곡, 선우일선 노래)를 듣다보면 특히 그런 소감이 든다.
   
빼어난 경치를 가진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야경. 국제신문DB
■일제강점기 우리땅 절경 담아내

가혹한 침탈자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던 1930년대 중반, 제국주의 식민통치 시절의 엄혹한 세태 속에서 이 노래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국토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서려있다. 민족의식이 점차 엷어져 가는 위기의 세태를 염려하고 노래를 통해 주체성을 회복시키려는 충심이 담겨져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에~ 석굴암 아침 경(景)은 못 보면 한이 되고

해운대(海雲臺)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해라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조선팔경가’ 2절



   
해운대가 등장하는 신민요 ‘조선팔경가’ 음반.
여기서 우리는 ‘해운대’란 세 글자에 유의해야 한다. 이 노래는 전체 4절 구성이다. 1절은 금강산과 한라산, 2절은 석굴암과 해운대, 3절은 부전고원과 평양, 4절은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을 등장시킨다. 우리 국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덟 군데 절경(絶景)이 가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2절 가사는 석굴암의 아침 풍경과 해운대의 저녁달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배열이 무슨 우선순위를 뜻하는 건 아닐 테지만 우리는 이 가사에서 부산 해운대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해운대란 지명의 유래는 동백섬에서 달맞이고개에 이르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공간을 다녀간 신라시대 시인 최치원(857~?)의 유람에 근거하고 있다. 15세기 대표적 기록인 ‘동국여지승람’에서 해운대에 관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부산 동쪽 18리에 있는 이곳은 산이 가파르게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있어 마치 누에머리와 같다. 그 위는 모두 동백, 두충, 송삼 등의 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시기에는 땅바닥에 동백꽃이 떨어져 사람과 마차가 그것을 밟고 지나간다’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산, 강, 바다, 온천 등 네 가지 천혜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해운대가 ‘조선팔경가’ 2절에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서술이라 하겠다.

이 노래의 작사자 편월(片月)은 작사가 왕평(본명 이응호, 1907~1940)의 또 다른 필명이다. 그는 폴리돌레코드사 문예부장으로 진작 ‘낙동강’이란 노랫말도 만들 만큼 부산에 대한 애착과 선호가 깊었다. 작곡가 형석기(1911~1994)는 1935년 어느 날, 이 노래 악보의 초고를 엮어서 절친 이면상(1908~1989)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대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밤새 고치고 다시 다듬었다. 이때 이면상의 아내가 안주와 술 한 병이 놓인 상을 방안으로 넣어주었다. 새벽 3시쯤 작품이 거의 완성되자 이면상은 친구와 감격의 축배를 들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던 아내가 다가와 슬며시 물었다. 제사는 잘 모셨냐고. 그 밤이 바로 어머니 돌아가신 날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두 친구는 ‘조선팔경가’ 작곡에만 심취해서 완성의 축배로 술병을 비우고 말았다. 난처해진 두 사람은 순간적 기지를 내었다. 완성된 악보를 제물로 올리고 뒤늦게 어머니 제사를 모셨다. 저승의 어머니께서도 그것을 기쁘게 여기실 것이라 믿었다. 세월이 흘러 분단의 격동 속에서 친구는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면상은 북으로 올라가고 형석기는 남쪽에 남았다.

■분단 탓 남북에서 제목·가사 바껴

두 친구의 슬픈 결별처럼 이 노래 또한 분단으로 말미암아 쓰라린 변화의 곡절이 생겨났다. 남과 북에서 제목과 가사가 제각기 기형적으로 바뀌었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국호를 연상시킨다며 ‘조선팔경가’란 제목을 ‘대한팔경’으로 바꾸었다. 원곡 가사에서 북한지명이 들어있는 3절과 4절은 아예 삭제해버렸다. 바뀐 가사는 3절까지인데 강릉 경포대와 양양 낙산사가 뜬금없이 등장한다. 이렇게 원곡가사를 변조 왜곡시킨 건 북한쪽도 마찬가지다. 제목은 그대로 썼지만 가사에서는 남한 쪽 지명을 모두 삭제했다. 금강산, 백두산, 총석정, 동해, 부전고원, 평양 등 모조리 북한쪽 지명으로만 채웠다. 분단의 모진 풍파가 노래 한 곡에도 이렇듯 드세게 휘몰아치게 되었으니 이 가슴 쓰라린 고통과 상처를 과연 어디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으리.

하루해가 기우는 저녁, 해운대 동백섬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다시 원곡가사로 ‘조선팔경가’를 나직이 불러본다. 기막힌 소요의 즐거움이 2절 가사에 등장하는 해운대 분위기와 그렇게도 잘 어울린다. 친구와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불빛 휘황한 광안대교, 오륙도, 달맞이고개 쪽을 아스라이 바라보는 풍광은 가슴이 시릴 만큼 환상적이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드넓은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동백섬, 영화의 전당, UN기념공원, 벡스코, 누리마루, 수영사적공원 등 부산의 대표적 상징과 유명 관광지는 모두 이곳에 몰려있는 듯하다. 호텔, 식당가, 영화관, 쇼핑몰 등 각종 위락시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규모 주거단지로 변한 해운대 신시가지와 마린시티는 이제 해운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해운대가 왜 ‘조선팔경가’의 앞부분에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인·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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