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카린, 이정윤 설치미술
- 박자현 회화·허찬미 정물화는
- 갤러리 미고 26일까지 전시

한때 지역 미술계에 회자되던 ‘부산작가를 전시하는 화랑이 없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박진성·이정윤·박자현·허찬미 등 조각 회화 설치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이 ‘눈물’ ‘생명’ 등 묵직한 주제를 재미와 의미를 살려 지역 화랑가에서 풀어내고 있다.

	박진성 작가의 ‘풍선’(왼쪽), 이정윤 작가의 ‘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

■아저씨의 눈물로 ‘반전’ 감동

박진성 작가의 조각 작품은 무심코 보면 술을 좋아하는 유쾌하고 귀여운 아저씨 인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저 재미로만 치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눈가에 동그랗게 맺혀있는 눈물은 울컥하는 감성을 어루만진다. 반전이다. 박 작가는 “눈물을 그려넣지 않은 미완성 작품을 보면 인형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눈물을 그려 넣는 순간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눈물이 작품의 요체이다.

작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에 주름과 수염을 표현하여 만들어진 특유의 ‘아저씨상’을 통해 가식적이지 않고 꾸밈 없는 어른의 내면을 담아 왔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풍선을 불거나, 그 위에 앉아서 쉬는 ‘풍선’ 연작을 공개했다. 작가는 “풍선을 통해 억눌려왔던 가슴 속 이야기를 불러내고 끄집어낸 모습을 시각화했다”고 했다. 맥화랑에서 오는 14일까지 박진성 개인전 ‘아는 사람’.

■시든 꽃에 유리가루 뿌려 새 생명을

코끼리·넥타이·하이힐 등을 이용한 설치미술로 잘 알려진 이정윤 작가는 ‘생명’을 주제로 한 유리작품을 선보였다. 사각형 유리 안에 담긴 채 시들어버린 꽃을 다시 피워내기 위해 작가는 자투리 유리판을 갈아내 가루로 만들고, 그 꽃들 위에 가루를 뿌려 가마에 구워냈다.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듯 찬란하게 빛났다. 왜 ‘유리’였을까? 그는 “한순간은 찬란했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연약하지만 다시 깨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보듬으며 살아갈 날들을 꿈꾸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유리를 선택한 이유다”고 했다.

전시장 지하 공간에서는 설치미술 ‘Code Green: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유리 작품과 조명을 배경으로, 안정아(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이수자)가 부르는 ‘꽃이 있다’가 흘러 나왔다. 이 작가는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라 믿던 것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과거가 되는 듯 했다. 과거에 기대 살던 시대가 끝나고 어쩌면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는 희망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카린(옛 메르시엘 갤러리)에서 28일까지.

■현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 표현

	박자현 작가의 ‘descent’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숨가쁜 변화와 존재에 대해 고민을 담은 박자현, 허찬미 작가의 전시도 열리고 있다. 박 작가는 연필로 점을 찍어 표현하는 극사실주의 회화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경주 왕릉을 선보였다. 그는 “며칠 밤 거대한 무덤 사이를 지칠 때까지 걸어 다녔다. 무덤 속 인체의 뼈와 살, 근육들이 쌓여있는 듯 흘러내리는 듯 보였다”고 했다. 작가는 허물어짐·하강·수직낙하 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허 작가는 화단 위의 종이컵, 철봉 위에 앉은 새의 다리, 공사장 가림막 같은 흔들리거나 묵직하거나 가볍거나 아슬아슬한 것을 정물화처럼 남겼다. 그는 “부산의 공사현장은 주변에 흔히 있는 풍경이었고 낡은 아파트는 곧 없어지곤 했다. 주변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 땅 위에 붙잡혀있는 기둥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속도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꼿꼿이 지키는 것들을 관찰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미고에서 26일까지.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