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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 ‘이장’ 정승오 감독

세기말적 가부장제 이별 고하는 가족들…연대와 공감에 집중

  • 국제신문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3-17 19:29:1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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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장 상징인 아버지 묘
- 이장하기 위해 모인 5남매 통해
- 한국사회 민낯 그린 블랙코미디

-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 아시아영화진흥기구 넷팩상 등
- 국내외 영화제 수상·초청 주목

- 첫째 혜영의 초등생 아들 동민
- 3대 걸친 폐습 끊어내는 인물
- 정 감독 소망 담겨 특히 애정

지난해 한국 영화 중에 가장 바쁘게 전 세계 영화제를 다닌 작품이 두 편 있다. 한 편은 모두가 알고 있듯 칸영화제를 시작으로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다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생충’만큼이나 바쁘게 전 세계를 다닌 독립영화 ‘이장’이다.

   
세기말적 가부장제에 이별을 고하는 영화 ‘이장’으로 전 세계 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정승오 감독. 정 감독은 ‘이장’에서 가족 내 차별의 근본적인 뿌리인 가부장제와 이별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세기말적 가부장제에 작별을 고한다!”라는 다소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헤드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이장’은 국제영화제작가협회가 베를린,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더불어 A급 영화제로 인정한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신인 감독 경쟁 대상과 아시아영화진흥기구가 수여하는 넷팩상을 동시 수상했다. 이외에도 바스타우국제영화제 금마장영화제 뉴욕아시안영화제 피렌체한국영화제 벵갈루루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천독립영화제 등 유수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받아 ‘벌새’에 이어 한국 독립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코로나19로 극장가에 찬 바람이 부는 가운데 오는 25일 관객과 만난다.

정승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장’은 아버지 묘를 이장하기 위해 5남매가 모이면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이야기로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위트 있게 그려낸 블랙 코미디 영화다. 남성 감독이 그린 여성 서사의 영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장리우 이선희 공민정 윤금선아 곽민규 등 독립영화계를 주름잡는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해 공감형 연기를 펼쳤다.

어려운 시기에 ‘이장’이 개봉하는 것을 두고 “코로나19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가운데 관객과 잘 만나서 소통했으면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정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부장제와 이장(移葬)

   
아버지 묘를 이장하기 위해 5남매가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위트 있게 그려낸 영화 ‘이장’의 스틸.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삶의 곳곳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10, 20대는 그렇지 않다거나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 부모님 세대에게는 여전히 가부장제의 영향이 피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장’에서는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 장손처럼 우리 사회의 일면에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난다. 5남매의 막내이자 장남인 승낙(곽민규)이 없으면 이장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큰아버지 탓에 잠적한 승낙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누나들의 모습이 중반부까지 이어지고, 결국 가부장제에 이별을 고하는 네 자매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면 1986년 인천에서 태어나 외아들로 자란 정 감독에게 가부장제는 어떤 것일까? “‘이장’에서 그려지는 가부장제의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어머니다. 어렸을 때 제 가정은 해체됐다. 어머니가 아버지 집안의 가부장적인 풍토를 아주 싫어하셨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성장해서 그런지 ‘이장’에 그런 부분이 담겼다.” 그는 어릴 적 제사를 지내면서 여성들은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족 내에 차별받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 차별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시작한 작품이 ‘이장’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30대 중반에 정 감독이 젊은 층에게 낯선 단어인 ‘이장’을 소재로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 성묘를 하러 갔다가 내려오는데 공동묘지가 아파트 부지로 설정되면서 산소를 강제로 이전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성묘를 하러 갈 때마다 죽은 사람들의 마을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굳이 죽은 사람들을 끄집어내서 강제 이주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장’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영화에서는 가부장의 상징인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면서 5남매는 가부장제와 작별한다.

■남성 감독이 그린 사실적인 여성 캐릭터

   
영화 ‘이장’ 촬영현장에서 동민 역의 아역배우 강민준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정승오(오른쪽)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이장’에 등장하는 네 자매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여성 작가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휴직과 퇴사 권고를 동시에 받게 된 장녀 혜영(장리우),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돈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둘째 금옥(이선희), 결혼을 앞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셋째 금희(공민정), 여성운동을 하는 대학생 넷째 혜연(윤금선아)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여느 자매처럼 작은 일에도 티격태격하고 의견 차이를 보이지만, 가부장제의 벽에 부딪히면서 연대한다.

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데 외아들인 그가 어떻게 현실에 있을 법한 네 자매를 구상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어머님이 열두 남매인데 그중 일곱 분이 이모님이시다. 또 아내가 5남매의 셋째고, 막내가 아들이다. 제 가족의 풍경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흡수됐고, 이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직간접적인 경험이 시나리오에 녹여졌다.” ‘이장’ 이전에 그가 연출해 단편영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은 흩어져 살고 있던 네 자매가 모여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이장’의 네 자매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 미쟝센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정 감독이 가장 애정을 쏟은 인물인 장녀 혜영의 초등학생 아들 동민(강민준)이다. 동민은 할아버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갔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우리 아래 세대만큼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이 담긴 인물이 동민이다.” 동민을 연기한 아역배우 강민준은 실제 할아버지 묘의 이장을 봤기 때문에 ‘이장’의 과정이나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연기를 했다.

■공감의 영화

정 감독은 각종 영화제에 초청된 ‘이장’으로 각국의 많은 관객과 만났다. 가부장제라는 소재에 대한 다른 나라 관객의 반응은 어땠을까? “언어와 문화가 다름에도 관객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남녀 차별이 없을 것 같은 다른 국가의 사람들, 특히 여성 관객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정 감독은 유독 ‘공감’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공감이 그를 영화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작은 회사에서 보조 일을 하던 어느 날 공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충격을 받은 정 감독은 1년을 칩거하다시피 살았다. 그때 우연히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패치 아담스’를 보고 어떤 힘을 얻었다. “이전까지 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패치 아담스’를 보고 영화가 지닌 힘과 매력을 알게 됐고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수능시험을 준비한 그는 스물다섯 살에 용인대 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영화 ‘이장’을 연출한 감독이 됐다. ‘패치 아담스’를 보고 그가 느꼈던 공감이라는 힘을 이제 누군가에게 주는 감독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관계와 그 사람들이 연대하는 순간이 흥미로워요.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어떻게 연대하고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디테일하게 탐구하고 싶습니다.”

정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로 공감의 손길을 내밀지 궁금하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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