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작가의 개인전 ‘The Way Part2’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에 걸린 액자 속 풍경엔 나비 모양의 불빛이 들판이 쫙 펼쳐진 길을 가득 채우거나, 호수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극사실주의 기법을 활용했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쓴 그림으로 느껴졌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한참 들여다봤다.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이정록 작가가 산티아고길에서 찍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사진은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 기법을 쓴 작품이다. 작가는 길게는 6시간이 넘게 플래시의 순간광(빛)을 중첩해 필름 위에 형상을 새기면서 작업했다. 왜 이런 수고로운 방법을 택했을까.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을 작품에 담았다. 나비는 역사, 종교적으로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 탄생과 죽음, 이상과 저승의 메신저로 읽히기도 하고. ‘navi’는 히브리어로 ‘선지자’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930㎞ 여정을 노란 화살표를 따라 홀로 걸으며 작가로 살아온 20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예술사진은 현실을 재현하기보다는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묵 속에서 흙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질문이 깨어났고, 자신과 타인, 자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다.”

작가가 걸었던 길에는 아스팔트·시멘트·돌·흙·꽃·강가·숲·도시·농어촌·산·평원과 같은 세상의 거의 모든 길이 담겨있었다. 자아와 인류를 찾아가는 영성의 길, 과거에 대한 향수, 애도, 자연과 합일, 일상의 탈출, 여행, 육체적 모험, 개인적 시험의 장 등 여러 이질적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작가는 밤과 아침, 땅과 물, 사진과 미술, 종교와 과학, 물질과 정신 등 미묘하게 겹쳐진 경계의 부분을 탐구해왔다.

“길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것으로 어떤 힘을 가지게 된다. 무언가 에너지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고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 세계에 대한 느낌을 표현했다. 카메라와 조명 기구를 들고 반복해서 오가는 고된 길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가고 표현하는 순간이었다.”

2007년부터 ‘생명의 나무’ 시리즈를 이어온 작가는 미국 로체스터공과대 영상예술대학원에서 순수 사진을 전공했으며, 영국 런던 폰톤 갤러리, 중국 상하이 젠다이 컨템포러리 아트 스페이스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필립스 경매에서 작품이 3300만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 (051)731-5878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