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전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단연 작품이다. 관람객은 작품의 선과 색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미적 감동을 느낀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삶과 작업방식을 안다면 감동이 파동을 일으키며 배가되기도 한다. 작가의 고민과 삶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만들어진 완성품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김청정 작가가 부산 수영구 미광화랑에서 디지털 판화 ‘별이 피다’ ‘별이 피다2’를 소개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올해 여든인 김청정 작가가 부산 수영구 미광화랑에서 15번째 개인전 ‘eco signal(에코 시그널)’을 연다. 2009년 서울 학고재갤러리 전시 ‘내면의 빛’ 이후 10년 만이다. 김 작가는 “최근 작업을 갈무리하면 ‘입체와 평면’으로 정리된다. 단순 명료한 형태 사이로 물결치듯 보이는 빛과 환영에서 우리가 사는 자연생태계가 엿보였고 이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1970년대에 ‘돌멩이 시리즈’를 통해 인공과 자연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줬다. 시멘트에 유화 물감을 엷게 칠하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해 자연석과 진배없는 모습으로 꾸몄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무너진 셈이다. 1980년대에는 벌레로 나무가 썩어가는 형상을 조각해 작위와 무위의 어우러짐을 표현했다. 이후로는 빛이 사물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표현해 ‘환영과 실재의 경계는 무엇인가’를 관람객에게 물었다.

이번 전시에는 빛이 사물에 깃든 모습을 최대한 단순화한 작품을 판화 형태로 공개했다. 작가는 빛을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작품 활동 내내 한국 전통 미학에, 구조와 평면을 최대한 단순화하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조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는 평단의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에도 작가의 이 같은 감각이 슬쩍 엿보였다.

작품 재료는 ‘디지털’이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에 그린 그림을 출력해 액자에 담았다. ‘디지털 프린팅’은 신진 작가도 머뭇거린다. 원로작가는 “전통적인 소재와 ‘디지털’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연재료인 달걀 노른자에 꽃에서 추출한 색을 섞어 물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아크릴 물감으로 유화를 그리는데 그 역사가 길지 않다”며 “예술가는 가장 새로운 재료로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있고 거기에 따랐다”고 말했다. 낯선 재료로 작업하며 이질감은 느끼지 못했을까? 김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술발전에 놀랐다. 아크릴물감은 물론 먹의 번짐까지 실재와 차이를 크게 못 느낄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작가는 작업 과정과 작품을 통해 디지털시대에는 자연과 인공은 물론 환영과 실재의 경계 역시 허물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 작가는 신라대학교 예술대 학장을 역임했고, 제1회 창원조각비엔나레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서울올림픽공원, 광안 만남의 광장, 아시아드 조각공원 등에 소장되거나 공공미술품으로 건립됐다. 오는 30일까지 전시. (051)758-2247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