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우동 소울아트스페이스

차규선 작가의 회화는 조선 시대 초기 도자기인 분청사기를 평면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분청사기는 회흑색의 바탕흙 위에 정선된 백토(白土)로 겉을 꾸민 것이다. 다양한 분장 기법과 무늬는 현대회화를 보는 듯 간결하면서도 추상적인 미적 감각이 있다. 차 작가는 이 같은 기법을 회화에 접목해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캔버스 표면에 도자기에 쓰이는 흙을 바르고 흰색 안료를 뿌리거나 덧칠한 후 주걱과 나뭇가지, 부러진 붓 등을 이용해 일필휘지로 작품을 완성한다. 표면이 마르기 전에 물을 뿌려 번지는 효과를 주기도 하며, 그림을 다 그린 후엔 바람과 햇빛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릴 때의 직관과 감성이 스며있는 데다 질박하고 소탈한 분청사기의 매력이 오롯이 살아 숨 쉰다.

차규선 작가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보았던 풍경을 담아낸 ‘행각行脚’ 시리즈 중 ‘설악’(왼쪽)과 ‘매화’.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차 작가는 다음 달 10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풍·경(風·景)’을 연다. 동양적 풍경을 단아한 느낌의 현대회화로 승화시킨 작품 26점이 공개되며 ‘풍경’ ‘꽃’ ‘너바나’ ‘행각’ 등 대표적인 시리즈를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작가는 “창작의 고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캔버스에 흙을 바르고 분청사기의 표면처럼 흰색 안료를 칠하거나 긁어내던 것이 지금의 그림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한다. 이후 2001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된 ‘분청사기 명품전’에서 만난 분청사기조화수조문편병(15세기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분청회화’라 이름 붙였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계, 계곡, 산, 꽃, 눈 등 자연 풍경을 그리지만, 사실적 묘사가 아닌 마음속에 떠오른 관념적인 풍경(심상의 풍경)을 그린다. 차 작가는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다 보니 그림도 드로잉 하듯이 즉흥적으로 그려낸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몰아적인 상태에서 작업하는데 당시 분위기나 기분, 날씨 등에 따라 그림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재료를 다루며 체득한 능숙함과 강한 필치로 시를 읽듯 간결하게 표현된 그의 회화는 자유로운 해석과 과감한 화면을 보여준다. 분청사기의 동양적 정취와 단아한 역동성을 담고 있는 ‘분청회화’를 통해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051)731-5878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