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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9> 김사이 시인의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삶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 … 그들 위해 열심히 쓰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27 18:41:2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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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변해도 사회적 편견 여전한 여성
- 자본 권력 앞에서 부자유한 노동자 등
- 낮은 곳에서 버티는 생명을 노래한 시

- “일하는 사람 있어야 세상 굴러가는 것
- 이상세계 아닌 ‘진짜 현실’ 다루고 싶어”

가부장적이고 신분 차별이 있던 시대는 정말 지나간 것일까. 세월이 흘렀어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여성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고, 자본 권력 앞에서 노동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이야기는 사회학을 주제로 한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이다. 김사이 시인의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를 읽었을 때, 조금쯤은 무뎌져 있던 현실이 불쑥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는 예쁘고 고운 세상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낮은 곳에서 버티는 질긴 생명을 아프게 드러내기도 하는 장르다. 이 시집이 그랬다. 김사이 시인을 서울시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거리에서 만났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만난 김사이 시인이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에 관해 말하고 있다.
■ 일하면서 詩쓰는 사람들을 만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2번 출구를 벗어나자 김사이 시인이 수줍은 미소로 반겨준다. 밥부터 먹자며 식당으로 데려가는데, 서울에 올라온 고향 친구를 반겨주는 모습이 저렇지 싶다. “저 출구 앞이 지하철이 생기기 전, 남구로 버스 구종점이었어요. 새벽 인력시장으로 유명했던 장소였죠. 요즘은 모여드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요.”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그는 길을 걸으며 거리 이곳저곳을 설명했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새로 들어선 건물들도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사이에는 오래된 작은 건물들과 밥집들이 있고,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시인의 설명을 들으며 구로구 디지털로 27나길을 천천히 걸었다.

김사이 시인은 1971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해남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는데, 책이 별로 없었어요. 일기를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도 살고 있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책을 많이 읽은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그 친구들에게 책을 빌려 읽곤 했죠.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어요. 학회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현대문학을 읽기 시작했으니, 또래들보다 늦은 편입니다. 그렇게 읽고 공부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시인의 길로 접어든 셈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서울에 올라왔다. “회사에 다니면서 만난 선배 한 분이 제가 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소개해줬어요. 가입 절차로 작품 합평회를 했는데, 제 시에서 ‘남도의 정서와 가락이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신입회원도 확보하고 격려하려고 해준 말이 아닐까 싶어요. 회원들과 잘 어울렸어요. 문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용직 노동자, 공장노동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각자의 작품들은 완성도를 떠나 생생한 삶과 정서가 담겨 있었어요.”

김 시인은 문학회 시절에 시 쓰기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썼다고 했다. “열심히 썼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그는 2002년 ‘시평’으로 등단했다. “작품을 응모하고 기다리는 동안 조마조마했죠. 막상 당선된 후에는 믿어지지 않았고요. 열심히 쓴 사람이 ‘시인’이라는 이름을 받는구나,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은 2008년에 나왔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자연스럽게 시집 출판까지 이어졌으니까요.”

■ 일하는 사람들을 詩에 담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김사이·창비·2018
김 시인은 최근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수, 전문가, 이런 지식인들만 글을 쓰는 건 참 답답해요. 이 세상에는 책상물림들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거든요. 실제의 삶이라고 할까요. 저는 진짜의 삶을 시로 쓰고 싶어요.”

두 번째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에는 시인의 어린 시절과 고향 집 이야기를 그린 자기 고백적인 시와, 여성과 노동자의 삶을 담은 시들이 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 바탕과 사회의 부조리를 함께 느낄 수 있다.

그의 시 ‘내 죄는 무엇일까’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주고 흙을 다지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로 시작해 여성의 삶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담담히 서술하고,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고 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는다만/ 여자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나/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로 끝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많은 여성들의 삶이 떠올랐다.

‘공포 영화’에는 노동자가 있다. “홀로 삼년째 복직투쟁하는 해고자는/ 작업복만 봐도 일하고 싶다/ 가축으로 일하든 기계로 일하든/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밥줄인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꾹꾹/ 한 줄기 빛으로 기대하지만/ 기약이 없다/ (중략) 단역들이여 비극으로 끝날 한 편의 삶이여” 마지막 구절에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시는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걸 아프게 말해준다.

‘탈 탈’을 읽으면 시인과 함께 걸었던 거리의 옛 모습,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구로공단역을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꾸더니/ 가리봉역을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꿨다/ 구로, 공단, 가리봉 이 거리에/ 이십여 년 내 삶의 흔적이 지워졌다/ (중략) 불편한 역사를 콘크리트로 발라 덮는다고/ 뒷골목 노동이 사라질까/ 조선족이 그 자리를 채우고/ 바다 건너 이주민 노동이 눈물로 온다” 덮는다고 지워질 수 없는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 시인은 “제 시를 읽은 분들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말해주더군요. 맞아요.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이 굴러가는 거죠.”

헤어질 무렵 시인과 처음 만났던 지하철 입구로 돌아왔다. 봉고가 몇 대 와서 사람들을 내려주고 갔다. 새벽에 이곳에서 저 차를 타고 ‘오늘의 일터’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오늘의 세상을 굴러가게 했으리라. 김사이 시인이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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