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면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산다.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바닥과 벽, 도로와 철도, 의자와 테이블 등 평면은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면성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고 불가피한 것 또는 거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지한다. 평평함에서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머레이 프레데릭스의 ‘솔트Salt 305’. 프레데릭스의 사진은 단순한 평평함이 아니라 무한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환기시킨다. 소소의책 제공

‘평면의 역사’는 이처럼 이중적인 평면의 실체를 파고드는 책이다. 시공을 건너뛰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평면과 이를 둘러싼 인간 삶을 살펴본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와 서인도대학교 명예교수로 역사와 지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저자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면서도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던 평면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고찰한다.

책은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지구는 평평하다는 고대인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든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에 재현된 평면성 등에 이르기까지 철학, 종교, 역사 등을 폭넓게 넘나들며 평평함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100만 ㎞에 이르는 철도, 산림 개간 작업 등 현대 문명 사회에서 평평한 표면은 모두 계획되어 만들어지거나 인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면의 장점을 강조하고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론 평면에 부정적이기도 하다. 평면은 물리적 차원과 더불어 매끄러움, 표준규격, 수평, 예측성 등을 상징하며 선호되지만 무미건조함, 지루함, 부재, 획일성, 결핍, 죽음 같은 의미까지도 내포한다.

계속해서 평평함을 더해온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종교적인 예언들은 지구가 평평한 종말을 맞게 되리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인 결과가 이런 최종적인 평평함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평면성은 편리함과 효율을 확장하는 한편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위협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